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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Apr 28. 2022

취업알선의 원칙과 전략


3년 전 명예퇴직으로 떠난 P 소장님은

현재까지 내가 모신 소장님들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성품이었다.

그 분이 계실땐 민간위탁기관 상담사들과의 간담회도 자주 개최했는데 간식도 넉넉히 준비하고 간담회를 마치면 점심식사도 후하게 사주시곤 했다.

한번은 간담회에서 나를 호명하여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더니 우리 센터에서 제일 취업알선도 잘하고 실적도 뛰어난 직원이라며 마구 칭찬을 하셨다.

지청장님이 점심을 사는 자리에도 나를 데리고 가서는 상급기관의 직원들이 여럿 둘러앉은 자리에서 나를 우리센터의 에이스라며 마구 치켜세우셨다. 아,그순간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민망하다.


우리부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후 민간위탁기관을 직접 운영하는  여자 이사님이 계시다.

현재 내 동료들 중에는 그 분을 팀장님으로 모시고 일했던 동료도 4명이나 있지만, 재밌게도 그 이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센터의 직원은 내가 되었다.

"자기는 어떻게 그렇게 취업알선을 잘해? 언제 우리 사무실에 와서 노하우 좀 강의해주라~"

언젠가 센터에 들른 이사님이 내게 말을 건네기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노하우 같은 거 없어요, 그냥 열심히 하는거에요."



사실 공공기관의 실적을 판단하는 바로미터는  '취업률'이다.

다행히 현재 나는 취업알선 전담팀이 아니지만,

취업알선 부서에서 3년 가량 근무할 때에 실적에 대한 압박은 떨칠 수가 없었다.

그게 싫어서 3년후에 내가 보직변경을 직접 요청했으니 내가 그 업무를 미친듯이 좋아했다고 볼 수도 없다.

구인자와 구직자를 연결하여 좋은 결과가 나올때 보람과 성취감이 있지만 단발성 이벤트 처럼 휘발되어 버리는 감정이었다.


<노하우 같은거 없어요, 그냥 무식하게 열심히 하는 것 뿐이에요.>

사실은 이게 더 정답에 가깝다.

실적이라는 것은 양적 토대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화살을 아무리 쏘아대도 과녁을 제대로 조준하지 못하면 적중률은 현저히 떨어지게 되어 있다. 양으로만 승부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는 처음 입사할때부터 지금까지 취업알선에서 몇가지 원칙을 준수한다.


첫째,

반드시 취업의지가 명확한 구직자만 상대한다.

허위 구직자들은 철저히 외면한다.

취업의지가 명확한 분이라면 70세 어르신들도 경비원으로, 재가요양보호사로 취업시켜 드렸다.

취업알선을 했는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면접에 불참하는 구직자는  미안하지만  그날부터 내겐 버리는 카드가 된다.

마더테레사 유형의 상담사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시간에 '진짜 구직자'들에게 집중한다.



둘째,

구인정보는 반드시 직접 탐색하게 한다.

자기집과 업체와의 출퇴근 거리, 임금 및 여타 근로조건 등은 모두 개별적 니드 사항이다.

그걸 구체적으로 필터링 할 수 있는 건 누구보다 구직자들 본인이다.

2022년 업무매뉴얼에서 본부는 상담사들에게 구인정보 제공의무를 강화했다.

나는 그 지침에 당당하게 불만 댓글을 달았다.

대체 성인인 구직자들이 유치원생도 아닌데 정보를 왜 제공해줘야 하냐고, 자기가 가고 싶은 회사도 탐색하지 못하는 구직자들에게 구직의사가 있기는 한거냐고.

나는 본부의 지침에 비협조적이지만,유감스럽게도 우리 센터 내에서 그나마 취업실적을 내는 직원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철처히 인터넷 사용이 힘든 분들에 한해서만 구인정보를 제공한다.



셋째,

구직자가  구인업체 탐색을 끝내면 그 이후는 전적으로 상담사가 책임진다.

일단 해당 업체 채용담당자와 통화하여 조건을 확인하고,

해당 구직자에 대한 소개와 푸싱을 하고,

이력서를 팩스나 이메일로 직접 전달한다.

즉, 구직자는 자기가 지원하고 싶은 회사만 열심히 탐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넷째,

밀어부치기다.

50대 초중반 구직자가 구인정보를 탐색하여 A라는 회사에 알선을 요청했다.

A회사에 전화하니 45세 이하만 지원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경우 나이브한 상담사들은 대부분 "네, 알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는다.

연령의 갭차이가 다섯살 내외이면 나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채용담당자가 대표님이면 이 전략은 훨씬 효과적이다.

나는 대표님에게 일단 면접 기회는 한번만 달라고 읍소한다. 물론 이때 제일 중요한 어필은 구직자의 '적극적인' 취업의지이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이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경우 취업알선에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섯째,

집중 공략이다.

취업알선 전담팀에서는 하루에도 여러명 동시 알선을 하게 되지만 지금 부서에서는 내가 관리하는 한정된 구직자들만 책임지면 된다.

그런데 사실 관리인원이 70명이라고 해도

알아서 잘 취업하는 청년층들 빼고

사실상 취업의지 없는 수당 목적 참여자들 빼고 나면 취업 알선을 할 만한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ㅠㅠ

이때 나는 특정 한명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알선을 진행한다. 일명 끝장 취업이라고나 할까. 대개는 바로 채용이 되는 편이지만  한달 넘게 투자한 구직자도 있다.



여섯째,

다시 "양"의 문제이다.

성남에서 근무하는 입사동기가 2년 전에 취업알선 전담팀으로 배치된 후에 진짜 하루 걸러 한번씩 나에게 하소연을 해왔다. 자기가 팀원들 중에서 취업알선 실적이 꼴찌라며 엄청 힘들어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했던 방식으로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했다.


"쌤, 하루에 무조건 5명 알선을 목표로 해,

  그러면 일주일에 25명, 한달이면 100명을 알선하게 되겠지? 100명 중에 최소 10%만 성공해도 한달에 10명은 취업을 시킬 수 있어.

   잊지마, 행동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걸."


그녀는 어떻게든 하루에 다섯명 알선을 채워 나갔다. 채용이 되든 안되든 신경쓰지 말고 그 목표를 채울 수 있도록 계속 격려 했다.

만 2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취업알선팀에서 제일 바쁜 직원이 되었다. 일 잘한다고 더 많이 일을 시키는 팀장 때문에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문제지만. ㅠㅠ



취업 알선에서 왕도는 없다.

컨퍼런스에서 내가 만난 인상 깊은 상담사들의 공통점은, 굉장히 열심히, 열정적으로 구직자들의 취업에 동행하는 이들 이었다.


전국의 이런 유능한 상담사들을 1년에 한번씩 대규모 컨퍼런스를 통해 만남의 장을 제공하고,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서로의 열정을 전염시키는 것, 그것이 본부의 수뇌부들이 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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