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대처럼 산다.

웃는 얼굴 뒤에

by HS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한 번쯤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사람이 많이 오는, 소리를 치며 점장을 부르라고 난리를 피우거나, 담배냄새와 막걸리의 냄새가 섞여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손님, 축축한 돈이 주머니 속에서 구겨져 만지기조차 불쾌한 돈을 던지는 손님. 그런 손님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하필 그날은 온몸이 무겁고 눈앞이 침침했다. 빨리 집에 가야 했다. 피로감과 먼지가 쌓인 몸을 따뜻한 물과 함께 하수구 깊은 곳으로 밀어내고, 따뜻한 이불속에서 자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뒤로한 채 그날도 꾸역꾸역 거짓 웃음으로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계산을 하고, 담배를 건네준다.


오후 11시가 넘어도 다음 아르바이트생은 오지 않았다. 보통은 10분 전에는 다음 파트 아르바이트생이 와서 준비를 마쳐야 하고, 지금쯤이면 나는 퇴근했어야 한다. 뒤늦게 자다 만 처참한 몰골로 점장님이 유리문에 달린 종소리와 함께 다급히 달려와 사과를 하시지만, 괜찮다며 인사하고 나선다.


11시 30분. 그제야 전화벨 소리와 함께 편의점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발신인을 확인하고 귀에 핸드폰을 갖다 대며 불안감을 침과 함께 삼킨다. 엄마의 걱정 섞인 말에 나도 모르게 투정을 부려버렸다. 토해내듯 억울함과 지친 하루의 열변을 핸드폰에 대고 열심히 떠들었지만, 전화의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그날도 시켰던 심부름. 당연하다는 듯 대충 대답하고 집을 나왔지만 결국 깜빡했다. 사실대로 말하자 돌아오는 말은 날카로웠다. "멍청한 새끼, 그럴 줄 알았다. 됐어, 그냥 와."


엄마의 화는 걷잡을 수 없다. 건조한 날의 산불과도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모든 것을 불태우고 사그라드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 이제 23살이나 먹고 엄마가 무섭다고 말하면 대개 웃는다. 하지만 호랑이가 포효하면 근육들이 떨리며 마비되듯, 그 자리에서 나는 한숨을 내쉬곤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하늘, 어둡지만 그 속에서 밝게 빛나는 별들과 선명하게 보이는 달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들려오는 소리는 엄마의 불평불만이다. 굳이 옮기자면, 말한 것도 까먹는 등신, 겨우 아르바이트 좀 다녀왔다고 유난 떠는 새끼 등등. 표정이 조금 좋지 않거나 심부름을 잊어버렸다는 이유로 듣는 소리는 가지각색이다. 엄마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꼬라지 부린다"는 말이다. 그날도 들었다. 내가 조금만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 여지없이 듣는 말이다. 삭막하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내 시선은 자연스레 아래를 향하고 몸은 움츠러든다. 가만히 서서 내뱉는 욕들을 귀에 쑤셔 넣는다. 뒤늦은 억지 미소를 지어내 보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듣는다. 예전에는 모두 상처받는 아픈 말들이었지만 이젠 괜찮다.

불이 꺼진 걸까 "꺼져"라는 차갑고 날카로운 말과 함께 나는 다시 움직인다.


기본적으로는 무엇을 해도 엄마 앞에서는 최대한 기분 좋은 척하려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집안 분위기는 이 꼴이 나니 어쩔 수 없다. 그렇게 겨우 씻으러 들어가면 엄마는 일부러 더 크게 중얼거리며 푸념을 내뱉는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내 세상이다. 샤워기를 틀고, 눈을 감고, 따뜻한 물로 모든 것을 녹여내면 충분하다.


나는 모든 것을 하수구에 처박고 깨끗한 표정과 함께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고 방으로 들어간다. 문을 닫고 혼자가 된 순간, 얼굴의 긴장은 풀리고 다시 어둡고 힘든 기색을 내뿜으며 침대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다. 쉬고 싶어도 내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점장님 앞에서 웃어도, 엄마 앞에서 웃어도, 가짜는 가짜다. 너무 화가 나 숨을 죽인 채 머리를 쥐어뜯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뱉다 지쳐 눈물을 흘리며 어느샌가 잠든다.


나는 광대다. 동시에 기분에 맞춰 길러지는 존재다.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해야 한다. 엄마의 말속에서 그 어떤 모순을 발견해도 묻거나 따지지 않는다. 거스르는 것은 패륜이다. 엄마가 때리면 맞고, 엄마가 욕을 하면 그 욕설을 전부 내뱉으실 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것이 끝남과 동시에 시야에서 사라져 주어야 한다. 기분이 풀리면 다시 꼬리를 흔들며 웃으며 다가가 시키는 것들을 해내고, 적당히 내 시간을 가지기만 하면 나는 버림받지 않고 계속해서 길러질 수 있다.


나는 엄마를 이해한다. 그렇다고 그 행동이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린 그 누구보다 서로를 닮아있다. 성격도, 말투도, 생활 습관마저도. 우린 서로 같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을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릴 밀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해하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필요하지만, 다 안다는 오만함에 무시하고 단정 지으며 다가가지 못한다. 처절한 삶이 엄마를 저렇게까지 몰아넣었을 뿐이다. 조금은 알 것 같다. 한 발 잘못 내딛으면 나 또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라는 걸.

이젠, 그저 미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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