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4월 14일

같은 날, 다른 의미

by HS

4월 14일은 나에게 있어서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 날이다.


2023년 4월 14일.

친구가 죽었다.

그날의 기억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좋은 날이었다. 공강이라 과제를 한다는 명목으로 모여 있었다. 회색빛 구름으로 하늘은 가득 차 있었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


머리가 열심히 일하느라 열이 나고, 내가 잡은 펜은 종이에 수학 공식을 채워나가며 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머릿속을 꽉꽉 채우고 있던 찰나, 친구가 나를 부른다.

"핸드폰 확인해 봐."

뭘까? 한창 과제가 잘 돼 가는데, 지금 딴짓할 때가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켜진 화면에 올라오는 알람들.


친구의 부고 소식은 머릿속을 채운 숫자들과 기호들을 밀어내기엔 충분했다.

죽어? 누가? 장난인가?

내 사고는 인지를 거부하고 더 나아가 부정한다. 나를 어지럽게 하는 사실을 비워내기 위해 나는 잠깐 밖으로 나간다.

그럴 리가 없다. 우린 겨우 20살이다. 나는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그 친구는 취업했다.

회사에서 사고가 난 걸까? 떨리는 손으로 친구에게 전화한다.

4월의 따뜻한 날씨가 춥게 느껴진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내가 흘리는 식은땀과 구분이 가질 않는다.

핸드폰 너머로 귀를 통해 머리를 때리고, 가슴을 찌르는 한 단어.


자살.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오른다.

고등학교 3년간 그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이었다.

나보다 작은 체구. 항상 의자에 앉아있고, 주변에 친구들이 있었다.

외향적이진 않았지만 친하게 구는 애들이 많았다.

성적도, 실습도 우수하고, 자격증도 많아 사람으로서 존경했다.


어딘가 닮고 싶은 친구였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그 친구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굳이 다가오지 않지만 내가 다가가면 잘 받아주는 그런 친구.

3년간 반이 바뀌고, 친구들이 바뀌어도 그 친구는 항상 교실 어딘가에 있었다.


사진은 많지 않지만 그 친구는 항상 핸드폰으로 우릴 찍었다.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쟤 핸드폰 갤러리 보면 사진 다 있겠네" 라며 웃었던 것도 기억난다.


여기까지만 봐도 나와 그 친구가 엄청 친했다고 느껴지진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의미가 있는 친구였다. 공부를 하다가 막히면 어떻게 이해하는 게 좋을지 설명해 주고, 같이 새벽까지 게임을 했던 적도 많다. 실습을 도와주어 빨리 끝내고 다른 애들에게 장난치러 간 적도 있었다.

자격증 시험도 그 친구와 겹치는 날이 많았다.


내 3년에 항상 함께 있었던 친구다.

덕분에 실습을 하거나 자격증을 따는 것도 쉬웠고

다른 친구들과도 알게 되었다.

장난스레 형이라고 불러도 괜찮은 친구였다.


장례식을 가고, 관을 들어주었다.

나에게 친구가 많지 않아서일까?

중학생 때 이후로 남들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시선을 신경쓰는 나는 그 순간 만큼은 마음껏 눈물을 뿜어냈다.

그저 슬프니까. 그렇게 떠나버린 것이 진심으로 서운하니까 울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죽을 용기로 살아보지',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올 텐데', '조금만 더 버텨보지'

난 이딴 말들을 가장 싫어한다.

그 속 뜻이 어떻든 나에게 있어 죽은 사람에게 저런 말을 하는 건 마치 나약해서 포기한 사람이라며 무시하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죽은 사람에게 그딴 말을 해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죽은 사람을 깎아내려 자신은 하루를 더 버텨냈으니 안도하고 싶은 건가?


꼭 눈물이 아니어도 좋다. 울지 않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가볍게 그 사람의 어려웠던, 힘들었던 결단을 함부로 입에 올리고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가끔 그 친구와의 채팅을 본다. 틈틈이 올렸던 친구들의 사진. 친구 추가 된 계정 프로필.

게임 계정은 마지막 접속일이 표기된다.

그 친구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영원한 20살로.


그리고 그 친구의 힘듦을 알아주지 못했던 미안함은 계속해서 남아 있겠지. 그럼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이미 떠난 친구를 붙잡아도 의미는 없다.

내가 봐야 할 길은 뒤가 아니라 앞이니까,

그럼에도 잊으면 안 된다. 소중한 친구니까.


그렇게 1년이 빠르게 지났다. 친구들은 입대했다.

대학에 남은 건 나 혼자였다.

쓸쓸히 넓은 대학을 돌아다니고 강의를 듣고, 밥을 먹는다.

공부를 하지 않았던 내 성적은 당연 밑바닥.

말을 걸어오지 않으면 대화는 하지 않는 나의 친구도 당연히 없다. 매일 같이 4시간씩 통학하던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24년의 4월. 대학교 자퇴를 심하게 고민하던, 그런 시기였다.


2년이 지나 2025년.

많은 일이 있었다. 물론 좋은 일은 아니었다.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괴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왜 자신을 죽인다는 선택을 해야 했는지,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조금이나마 알 것만 같았다.


자살.
자신을 죽인다는 뜻이다.

나는 살인 충동 따윈 느끼지 않았다. 그냥 뭐든 이젠 그만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잊고 아무것도 없어졌으면 했다.


한탄, 슬픔, 분노, 상실, 책임, 부담 등등

내가 듣는 말, 보는 행동, 느끼는 모든 것들이 나를 묶어내는 족쇄, 내 위에서 나를 짓누르는 짐덩이들처럼 느껴졌다.


이어서 나는 악몽을 꾸게 되었다. 내가 괴로워하거나, 무서워하는 꿈. 점점 잔인하게, 섬뜩하게, 잠을 자도 숨을 헐떡이며 일어나고, 이마엔 땀이 흥건했다. 매일이 몸이 무겁고, 힘이 좀처럼 나질 않는다.


하지만 신기했다. 죽어도 된다 생각했을 텐데, 꿈속에서 나는 살기 위해 늘 도망치고 발악했다. 소리를 치고, 달리고, 칼을 휘둘러 자신을 보호한다.

"나는 진짜 죽고 싶긴 한 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다음 날.

아르바이트를 하던 편의점 구석에서 작은 수첩을 샀다. 집에 있던 작은 볼펜과, 애매하게 기억나는 일본어로 삐뚤빼뚤하게 한 글자씩 적었다.

내가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

그날도 4월 14일이었다.


23년의 4월 14일이 슬픔의 시작을,

25년의 4월 14일은 슬픔의 극복을 의미했다.


그리고 2026년의 4월 14일은 무슨 의미를 가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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