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어떤 유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와 편견에 대해
MBTI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MBTI는 일종의 성격 유형 설명서로 몇 개의 질문에 답을 하면 그에 따라 ‘당신은 이러이러한 경향이 강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중고등학생들에게 무척 인기가 있고 연예인들도 자신을 소개할 때 MBTI를 동원한다. 나? 나는 내 MBTI가 무엇인지 모른다. 한두 번 검사를 해 보았고 결과도 보았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솔직히 나는 MBTI를 믿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검사로 나온 결과가 ‘나’라고 하는 것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어요.
나는 제법 오랜 기간 내가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때, 숙제를 해야 할 때, 무언가를 끝내야 할 때 항상 힘들어했고, 무엇보다 미리 해 놓지 않고 막판까지 끌다가 겨우 헉헉대며 끝내는 경험을 무지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어렸을 때의 뚜렷한 경험이 있다. 어디선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동화책의 내용은 이러하다.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너무너무 게으른 여자가 살고 있었어요. 그 여자는 일하는 것도 귀찮아했고, 말하는 것도 귀찮아했고, 심지어 밥 먹는 것도 귀찮아했어요.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욕을 해도 고쳐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 여자가 결혼은 했나 봐요. 하지만 당연히 밥을 하지도 않고 청소를 하지도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서 잠만 잤어요. 하는 수 없이 남편이 밥을 해서 여자에게 밥을 먹게 했고 모든 수발을 다 들어야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일주일 정도 먼 길을 떠나게 되었어요. 남편은 정말 걱정이 되었어요. 아내가 귀찮아서 밥을 안 해 먹을 것이 분명했거든요. 그러다 남편은 좋은 생각이 났어요. 떡을 해 놓으면 먹겠구나. 그냥 집어 먹으면 되니. 남편은 여러 종류의 떡을 준비해서 여자 옆에 두었어요. 그러다 다시 남편은 걱정이 되었어요. 옆에 있는 떡을 집어 먹는 것조차 귀찮아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남편은 누워 있는 아내의 얼굴 위에 떡을 얹어 놓았어요. 손만 대서 입에 넣으면 되니까요. 일주일 뒤 남편이 돌아왔어요. 아내가 무사히 잘 있기를 근심하며 방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아니, 이럴 수가..... 아내는 죽어 있었어요. 얼굴에 있는 떡은 그대로였지요. 아내는 얼굴 위에 있는 떡을 떼어먹는 것조차 귀찮아 그만 굶어죽은 거에요.
적고 보니 참, 이 아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내용이 왜 그렇게 오래, 강하게 각인되었을까? 아마 동화책을 읽던 어린 나는 이 게으른 여자에게 감정이입을 하였나 보다. 게으르고 귀찮아하는 여자, 얼굴에 붙어 있는 떡조차 떼어먹지 않아 굶어 죽은 여자.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었을까? 게으르면 저렇게 죽는 거야. 그런데 왜 나는 나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확, 와서 박힌 것이다. 그냥 그렇게 스스로 내린 판단이 나의 정체성처럼 오래 남아 있었다.
나는 나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종종 말했다. 그러면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네가 게으르다고? 너는 너무너무 부지런한 사람이야.”
“그런 것 같지? 하지만 나는 천성이 게을러. 정말 게으른 것을 좋아해.”
돌이켜보면 남들이 나를 부지런하다고 말할 만도 하다.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 셋을 키웠고, 대학원을 졸업했고, 학교일뿐만 아니라 교육청 일도 많이 했고, 책도 다섯 권이나 출판했다. 게다가 나는 2년 반 동안 공부해서 한국어교사 2급 자격증도 땄다. 아, 참 돌이켜 보면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다. 힘들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냥 미친 듯이 일을 했다. 나는 항상 피곤했고, 항상 쉬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하였을까?
바뀐 게 아니라 잘못 알고 있었던 거에요
내 친구 JA는 매일 하는 루틴이 정말 많다. 새벽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줌으로 경전 읽기를 하고 매일 한 개의 그림을 그리고 블로그를 쓴다. 요가를 하고 노래를 배우고 다음 포털의 브런치 카페에 글도 올린다. 새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면서 꾸준히 공부를 한다. 그녀는 하루 다섯 시간 정도 자면서 어마어마한 종류의 루틴을 빠짐없이 해 내고 있다. 2년 넘게 108배를 하루도 빼지 않고 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무서운 여자다. 성격 이야기가 나왔을 때 JA가 말했다.
“저 이번에 MBTI 검사에서 다른 것이 나왔어요.”
“오호, 성격이 바뀐 건가요?”
“아뇨. 바뀐 게 아니라 잘 모르고 있었던 거 같아요.”
“놀라운데요?”
“저는 제가 정말 자유롭고 계획을 싫어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일이 있어 잠시 리듬이 깨졌을 때 알았어요. 매일 하는 루틴을 지키지 못하니 정말 힘들더라구요. 저는 루틴 속에서 오히려 자유와 성취를 느끼는 사람이었던 거에요.”
“어머, 몰랐어요? 정말? 본인이 계획적으로 하나하나 잘 챙기고 사는 걸?”
“몰랐어요.”
“저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요. 호”
JA와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곧잘 빠지는 함정이 있음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오히려 자신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 사는 건 아닐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큰 경향성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진 장점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단점에 초점을 두니까.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보다 부족하고 결핍된 것에 렌즈를 들여다 대니 자신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결핍의 두려움이 만든 편견
그런 관점에서 다시 나의 성격을 분석해 보면 이럴 수도 있다. 나는 제법 부지런한 사람으로, 게으른 경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의 이야기에 예민한 상태인데 어느 날 동화 하나가 나에게 경각심을 준 것이다. 자극의 크기가 큰 것이었지 성향이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르게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사실 어린 시절의 나는 제법 게으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좀 미안한 상태였는데 위의 동화를 읽고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린 것이다. 이후 게으른 천성을 조금씩 누르고 살면서 게으름을 이겨내며 살았다. 어느 해석이 맞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현재 오십대 중반의 나는 20대, 30대의 나와 많이 달라져 있다. 나이 든 사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다 그러하듯이 나도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야. 왜냐고? 너는 지금도 조금씩 바뀌고 있으니까.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 기억해. 너는 날마다 새롭게 바뀌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 나를 소개할 때 ‘천성이 게을러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냥 나는 충분히 할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까. 물론 미리미리 해 놓는 바지런이는 아니지만 막판 기일까지는 웬만하면 해내는 경향을 가진 사람으로 잘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