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자라도 단단해지기

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by 본비 은혜


아픔을 나눈다는 건 죄스러울 일이다.
꽤 미안할 일이다.
행복하기만 해도 부족한 시간에,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그들의 귀중한 일상에 작은 결을 만든다.
바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 없는 그들의 선한 마음, 우리들의 관계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기도와 염려를 그들은 갖는다.
미안하게도 많은 사람들의 일상 가운데 스며들어 내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 가득한 위로를 받는 중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극기훈련으로 문경새재 3 관문까지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 산속 길 어디쯤에 외딴집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저렇게 외딴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음악 크게 틀어놓고 책이나 읽고 살면 참 좋겠다는 아주 용감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얘기를 걷는데 지쳐버린 친구들과 나눴는데, 친구들은 무서워서 싫다면서 나를 신기해했었다.
그땐 먹고사는 것에 대해선 아무 생각이 없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숲 속에서 좋아하는 음악이나 크게 틀어 놓고 알콩달콩 사는 그림만 그렸었다. 아주 초등적인 낭만만 생각했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현실을 살면서 그때 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상상인지 깨닫는데 어렵지 않았다. 수시로 병원을 가야 했고, 필요한 물품들은 수시로 많았고, 필요한 교육도, 남편뿐이 아닌 사람이 그립다는 것을, 편리한 많은 것들 속에서 생활이 살아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사람들 속에 사는 것에 안도를 했다.
그리고 나는 사람 속에서 있어야 행복한 사람인 것을 알았다. 어쩌다 가끔 여행 중에 야산 외딴집을 보게 되면 사춘기 시절 품은 생각과 현실을 비교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미소를 짓는다.
삶은 사랑 말고도 필요한 게 많아도 너무 많더라는.

그가 아프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안부를 물어주며 응원해 주고, 기도해 주는 정성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나고, 눈물을 닦아낸다. 갑작스러운 연차로 학년말과 졸업 앞에 바쁠 일이 많은 직장에서 큰 배려를 받음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삼일 만에 출근한 학교에서는 황송하고도 세심한 섬김을 받았다.
그 섬김을 받으면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되었다. 겉으로는 아픈 일이 전혀 없을 분들에게서 듣는 예기치 못한 이별을 겪은 얘길 들으니, 큰 돌로 눌러 감춰두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들춰낸 죄스러움이 들었다.
나의 아픔을 고스란히 같이 겪고 있음이 느껴져 미안한 마음이 컸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그들의 사랑과 관심에 감사하며 어우러져 잘 살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주 가는 카페 알바트로스 사장님이 아이들과 짧은 영상을 보내왔다. 왕삼이도 챙겨 영상 속에서 만났다. 어찌 힘을 안 내랴!

미안함을 다른 에너지로 바꾸어야겠다는 나의 의지가 꿈틀거린다.
'이렇게 지금은 아닐 거야! 이 고비 넘겨서 집으로 꼭 데려가야지.'
각자의 기도 덕분일 거라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실 거야.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보여주실 거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고자 하시는 거야.'

삼일 만에 혼자 들어서 집.

집에 오니, 집이 참 좋다.
'여보, 집이 참 좋네. 얼른 집에 오자. 내가 데리고 올게.'
고구마묵을 주신 것을 먹여보고자 육수를 내면서 혼자 다짐한다.
'혼자 있을 때도 울지 말자. 난 엔도르핀 은혜잖아.'
에너지 충전해서 묵을 얇게 썰고 육수를 담아 밤길 운전에 졸지 않고 또 응급실에 왔다.

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