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은행을 찾아가 담당자와 얘기를 나누는 중에,
키 큰 직원이 어디선가 와서는 내 앞 담당자와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앞에 있는 나를 소개해 달라며 그 담당자에게 말을 하더라.
그러자 나와 썸?을 타고 있었던 담당자는 그 동기에게 나를 소개해 주더라.
" 우리 사무실에 가끔 오시는 분인데, ㅇㅇㅇ분이시고, 저와 입사 동기인 ㅇㅇㅇ입니다."
너무도 순식간에 소개팅이 되더라고.
그리곤 그 둘은 몇 마디 말을 더 하다가 자기 자리로 가는지 사무실 끝 계단을 향해 참 씩씩하게 가더라. 내 시선도 그 끝을 따라갔지. 잡아끌던 시선이 끝나자 있었는지도 몰랐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더라고.
그 낯선 감정을 시작으로 아주 훌륭한 결과물로 가정을 이루고, 두 딸을 만나게 되고. 그게 벌써 수 십 년 전이네.
아직까지는 다시 내 가슴이 쿵 하고 울린 적은 없더라. 아주 다행인 거지?
두 딸을 낳고, 큰 딸아이의 '청유'인지 '권고'인지, 아, '바람'이라고 하자.
이윽고 내가 직장인이 되었지. 말은 새겨듣는 게 바람직한 거 같아.
직장인이 되어 3년이 지나갈 즈음에, 도 단위 연수가 생겼지.
그 연수 중에, 친정 옆 동네 언니도 만나게 되어 그 연수가 얼마나 신났었는지 몰라.
전업주부에서 '연수'라는 것 자체를 처음 접하게 되면서 업무적인 것이며, 노사관계법, 교양 등 프로그램이 알차서 매시간 신났었어. 연수 강사들에게 아주 협조적인 연수생으로 자발적 참여를 하면서 즐기고 있었지.
그러다가,
문득' 나도 저런 위치에 서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좌중을 휘어잡는 그 힘이 멋져 보이더라.
연수 강사라는 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때였던 거 같아.
이후로도 어떤 업무가 주어지게 되면, 관련 연수를 찾아 듣게 되더라고.
연수를 들어야 그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물론 매뉴얼도 있지만 담당자의 경험이나 업무의 노하우 등을 새겨 들어야 해서.
그렇게 연수를 자주 들을수록,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라면 이렇게 해볼 거야.'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
그러다가 연수원으로 2박 3일? 3박 4일이었나? 연수를 가게 되었지.
첫날 180명 연수생의 대표를 뽑아야 한다고 연수원 담당자가 말을 하는데, 서로 일면식도 없는 연수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눈길을 피하는 그런 상황으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지.
'어? 아무도 없네. 그래? 그럼 내가 해볼까?'
내가 손을 번쩍 들었지 뭐야. 그게 시작이었어.
매시간 강사님을 소개하고, 강사님께 인사와 박수를 유도하는 게 연수생 대표의 일이다.
마지막 날은 장기 자랑과 레크리에이션을 2시간 하는데, 그 사회자는 나의 몫이 되어 즐거운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신났고, 같이 즐거웠던 시간이었지만, 누군가는 나의 설레발이 불편했을 수도 있겠지만.
누구도 나보다 더 잘할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추켜 세워줄 사람이 없을 땐, 마음이 하고 싶은데로 손을 번쩍 드는 용기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임했다.
그 색다른 첫 경험은 모든 행사가 끝나고 그곳을 떠나기 전날,
몇몇 사람들이 서로들 자기들 술 모임으로 오라고 불러주는데, 선약한 팀이 있다는 말을 하고는 조용히 차를 끌고 나와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시내 작은 카페에 들어가 가슴이 쿵쿵 뛰었던 시간들을 진정했었다.
어떤 일을 할 때 나의 심장이 뛰는지 알아낸 시간이 감사했고, 모든 일을 잘 해낸 것에 스스로 기특했었다.
그 경험은 나의 성장을 도와주는 발판이었다.
연수원에서 "찾아가는 지역 연수"로 그 팀이 우리 지역에 왔을 때, 나를 찾아주는 이들로 다시 반갑게 지역에서 마이크 잡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이를 통해 지역에서 나를 찾아주고.
이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어설퍼 보이지 않았는지, 업무 연수 강사로 활동하는 일이 드디어 오게 되었다.
연수물을 만들기 위한 준비과정이 어려워 고생은 되어도 비슷하게 흉내 내게 되었다.
그렇게 지역에서 한 번 두 번 불려 다니더니, 연수원에서 두 시간짜리 강의로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불과 몇 년 전, 연수생으로 '나도 하고 싶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이루어낸 기적이 참 감개무량했었다. 함부로 소망하지도 않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게 가슴에 품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신기하면서도 감사한 일을 경험했었다.
십 년이 지난 일이다.
지금도 가끔 연수 강사 요청이 온다.
재미없는 일상을 살고 있을 때, 가끔 만나는 심장이 뛰는 일이다.
나이도 먹어가니 이제는 여유가 좀 생긴다. 그게 무슨 주제든 주어지면 감당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비록 명강사가 아직은 못 되었지만 말이다.
가끔 내가 다니는 교회 행사에서 마이크 잡을 일도 생겼다.
그 자리 서기 전에도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 나만의 그림을 그렸었는데.
작은 소망들은 지쳐 사라지기 전에 "자리"를 만들어줬다.
가슴이 쿵쿵 뛰는 것에는 나의 바람이, 소망이 담겨 있을 때다.
그 쿵쿵을 즐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조차 신났던 기억이 난다.
이제 또 가슴이 쿵쿵거린다. 머릿속 이야기를 글로 적고 싶은 것에.
사라질까 조바심을 내다가 이야기가 재미있어 웃다가, 웃다가, 심각해지기도 하는 것이.
확신할 수 있겠는 것은,
나의 삶은 바람에서 시작된 소망이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또 다른 결과물을 향해 대단한 긍정으로 또박또박 나아가고 싶어진다.
그럴 거다.
쿵쿵 뛰는 가슴으로 신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