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우리 집은 대충이 없는 그와 대충인 내가 산다.
묵직한 그와 까불이 내가 산다. 우리 애들은 우리 둘의 절반을 정확하게 닮아, 진중하기도 까불기도 잘한다.
나는 모든 부분에서 덜렁이다. 그것이 청소기일 때도 있고 그것이 휴지를 꺼낼 때도 있고 그저 덜렁덜렁. 제대로 잡지 못해 우르르 흩어지게 되는, 우당탕탕 그런 상황들을 종종 맞닥뜨리게 된다.
노트북을 아무리 오래 충전을 해도 충전이 안되고,
멀티탭 콘센트에 전기가 들어가 주황색 불빛은 들어오는데 도무지 충전 되지를 않아,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벽을 바라보면서 ' 이 벽 전선에 전기가 안 통하는 것 같아' 혼자 중얼거린다.
분명히 그 벽 전기코드에 꼽은 멀티탭에 주황 불빛을 정확히 보면서도 말이다.
그 콘센트에 꽂힌 어댑터가 작동이 안 된다는 이유로 생각한 게 참 희한하다.
"딸~뭐가 문제인가 봐. 이것 봐 이렇게 충전이 안 되고 있어? 이거 뭐가 고장 난 거야?"
전기기사 자격을 갖고 있는 딸이 오더니
멀티탭에 잘 꽂은 어댑터의 꽂힌 충전기 선이 살짝 빠진 것을 발견하며,
"엄마 이게 제대로 안 꽂혔잖아. 이걸 꼭 눌러 꽂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니?"
하! 이런.., 어이가 없다. 선이 살짝 빠졌구나.
딸에는 탄식을 한다.
"아빠! 이런 엄마 어떡해요. 아빠가 빨리 와야 돼요. 엄마 이대로 혼자 둘 수 없어요. 이런 엄마를 어떻게 하라고요?"
웃음이 빵 터졌다.
정말, 이런 엄마를 어떻게 하지?
작은 문제를 작은 데서 찾으려 하지 않고 큰 것에서 찾으려던, 애꿎게 전기 배선이 들어오는 벽만 의심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웃긴 일이다.
잘하고 살아야 할 텐데, 모두가 걱정 덜하게 살아야 할 텐데, 나도 내가 걱정이다.
이러니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한없는 걱정이 서려 있다.
"그러니까 밥 먹어야 돼. 그러니까 약 먹고, 그러니까 빨리 나서 집에 가야 돼. 나 이런단 말이야."
그 얘기를 해주고 나니 이제 콘센트에 뭘 꽂을 때마다 제대로 꽂았느냐고 잔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나는 50년을 살아온 것 같다.
다행히도 내 부족함이 티 나지 않도록 늘 내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덕분에 내가 꽤 완전하고 근사한 사람처럼 보인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에 근무를 한다. 그렇다고 교사는 아니고.
다른 학교에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 중에 문 박사가 있다. 내가 업무에 막힐 때나 아리송할 때마다 전화해서 물어보면 귀신같이 찾아내서 정확한 것을 알려준다.
그의 생각이 아니고 정확하게 업무 편람, 조례, 규칙 등 잘 찾아서 뭐든 완전한 것으로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문박사라고 부른다.
몇 해 전, 문 박사 언니와 차를 마신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혼자되신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 나는 엄청나게 큰 반성과 깨달음을 얻었다. 지혜로움에 대해 대단히 갈구했던 날이기도 했다.
문박사는 아버지 상을 치르고 70세 되신 어머님 혼자 시골에서 농사짓기란 매우 어려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에 서둘러 농사와 시골집을 정리하고 도시로 모시고 나왔다고 했다. 어머니의 배움에 꿈을 실현시켜 드리기 위해 방송통신중학교가 있는 도시로 이사를 하고, 초등학교 졸업 확인이 되어야 중학교 입학을 할 수 있는데, 졸업한 초등학교는 수몰되어 인근학교로 자료가 이관되었다고.
설상가상으로 주민등록번호에 오류가 있어 그나마도 졸업증명서를 떼어 줄 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
문박사는 어머니의 공부에 한을 풀어드리고자 백방으로 알아보면서 모든 절차를 적법하게 갖춘 후에 드디어 입학을 할 수 있었다고.
입학하기까지 긴 우여곡절을 듣다 보니, 절로 대단하다는 말만 나왔다.
칠십 넘으신 어머니께 새 옷과 새 가방을 사드리고, 입학을 시켜드리니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공부하랴, 새로운 친구들 사귀면서 슬플 겨를 없이 이겨내셨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대학까지 이어지고.
그게 삶의 원동력이 되어 왕성한 노년기를 즐기신다고 말이다. 알아갈수록 대단한 문박사님 이었다.
그날 나는 우리 엄마를 그렇게 못 해드린 게 너무 미안했다.
오십 중반에 혼자 되신 엄마를 위해 그렇게 못해드린 게 너무 속상했다.
엄마도 그 한이 있는 것을 내가 아는데.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 교훈을, 생각거리를 주는 얘기다.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할 수 있기를, 그런 지혜가 나에게 있기를 바란다.
잘 살피고, 또 살펴서 꼭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 그게 나이고 싶다.
지혜로운 선물. 그걸 늘 고민하게 된다.
힘든 싸움 후 그는 나를 두고 가겠지?
나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문박사의 얘기가 나에게는 어떤 결과로 적용될까?
불 꺼진 병실 천정을 껌벅 껌뻑 바라보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