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주인공은 말이 없는 잔칫날

10분의 눈물

by 본비 은혜

지난 12월 응급실 생활을 시작으로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고, 그와 나 사이에는 많은 정리들이 오갔다.

오랜 시간 이별을 준비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막상 닥쳐온 현실은 믿기지 않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의 한복판에서 나는 위태롭게 서 있었다.


문상객이 조금만 덜 왔더라면, 우리 모녀는 아마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음만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내가 울 때마다 늘 말했다.

"당신은 10분만 울고, 딸들은 1시간만 울어. 너무 오래 울지 마."

그 당부 때문이었을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울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잔치 같은 장례식이 되길 바랐던 그의 바람대로 빈소는 이내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 찼다.

20년, 30년 전 인연을 맺었던 이들까지 먼 길을 달려와 주었다.

켜켜이 쌓인 세월을 넘어 만난 얼굴들이 반가워 왈칵 눈물이 나다가도, 정작 이 반가움을 함께 나눌 주인공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다시 저릿해졌다.


목사님과 교우들이 오셔서 위로예배와 입관, 발인예배를 함께해 주셨다.

담임 목사님은 남편의 장례만큼은 집례하지 않게 되길 바랐는데 결국 내 몫이 되었다며, 수많은 장례를 치러봤지만 이토록 마음이 아픈 적은 드물다며 함께 슬퍼해 주셨다. 그 깊은 애도가 역설적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슬픔을 덮어준 것은 결국 사람들의 온기였다.

반가운 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조금씩 눈물을 거두었다. 남편은 떠나는 순간에도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 하나를 남겼다. "슬픈 자리에는 반드시 찾아가 위로를 전하라." 그 평범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교훈을 우리는 몸소 겪으며 배웠다.


주인공은 말이 없으나 손님은 끊이지 않는 묘한 잔칫날이었다.

아끼던 처제도 처형도 슬퍼할 겨를 없이 쟁반을 들고 음식을 날라야 할 만큼 분주했다. 밀려드는 조문객에 자리가 모자라 이튿날에는 결국 더 넓은 빈소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나중에 정산을 하며 들은 장례식장 관계자의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5년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고인 앞으로 이렇게 많은 분이 오신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는 참 잘 살다 간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생의 궤적이 제단의 주황색 장미보다 더 짙고 향기롭게 피어올라 빈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비록 그는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를 찾아온 수많은 발길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세상에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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