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끝까지 우리뿐이구나!
그는 정말이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투병 중에도 그는 자신의 마지막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두곤 했다.
경황없는 날 내가 혹시 잊을까 봐, 수첩에 받아 적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며 당부했다.
“알바트로스 카페의 신맛 나는 커피 한 잔만 올려줘. 조문객들이 다 돌아가면 김동률의 ‘산책’을 틀어주고. 항암 첫해, 그 노래를 들으며 여주보를 걷던 시간이 참 좋았거든.”
빈손으로 가는 길, 그 소박한 부탁 하나 못 들어줄까 싶었는데 정신없는 잔칫날 속에 그만 커피를 잊고 말았다. 하지만 인연이란 참으로 묘해서, 그 말을 기억했던 걸까.
카페 사장님이 약속이라도 한 듯 신맛 아이스커피 한 잔을 들고 찾아와 제단에 올렸다. 아차, 싶으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울컥 차올랐다.
제단 위에는 성경책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그리고 조문객들이 올리고 간 국화꽃이 나란히 놓였다.
참 그다운 마지막 상차림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빈소에 김동률의 ‘산책’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 싱그러운 향이 가득한
어느 봄날 강가를 걷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조금씩 젖어 갔네 / 누군가 볼까 잠시 멈춰 섰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는 고백했었다.
투병 중에 여주보를 걸으며 이 노래를 듣다 참 많이도 울었다고.
다시 듣는 가사 속에서 나는 이제야 그가 홀로 견뎠을 시간을 본다.
꿈 많던 사람, 가족이 전부였던 사람이 모든 것을 놓고 떠나야 하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노래가 끝날 때쯤 그는 몹시도 가엽고 그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틀간의 잔치가 끝나고 깊은 밤, 나는 제단의 꽃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뽑았다.
몇 해 전 배워둔 꽃꽂이 기술은 결국 그를 위한 마지막 선물로 쓰였다.
추모공원에 잠든 그의 곁에 놓아줄, 세상에 하나뿐인 화려한 부케 두 개. 내 손끝에서 피어난 꽃다발이 당신의 영면을 지켜줄 것이라 믿으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꽃을 배운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 당신에게 가장 예쁜 꽃을 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화장장으로 그를 보내고 우리는 목 놓아 울었다. 다시 볼 수 없는 그 모습.
이별의 무게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우리를 덮쳤다. 화장장을 나오는 길, 아빠와 가장 애틋했던 작은딸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과호흡으로 쓰러졌다.
119 대원들이 출동할 만큼 급박했던 순간, 큰딸이 새벽녘의 기억을 떠올렸다.
누군가 동생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잠에서 깼다던 새벽. "무슨 일이지?" 하며 의아해했던 그 부름의 의미를 우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혼자 남겨질 작은딸이 걱정되어 아빠가 미리 보낸 간절한 신호였음을.
“동생 좀 잘 챙겨라, 부탁한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고도, 영원의 길을 떠나면서도 끝까지 우리 걱정뿐이었다.
아빠는, 그리고 당신은 마지막까지 우리를 지키는 커다란 나무였다.
아빠는 정말 끝까지 우리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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