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은 3년 차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아빠의 간병이라는 핑계 뒤로 작년 10월부터 휴직 중이었다.
시작은 도피였을지 모르나, 딸의 존재는 아빠에게 무엇보다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직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내게는 미안함을 덜어주는 위안이었다.
참 묘한 일이었다. 그가 일상을 사는데 어려움이 없어서 딸에게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해, 딸애가 모처럼 숨을 돌리려 여행지를 알아보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할 때면, 괜찮던 아빠의 상태가 약속이라도 한 듯 나빠졌다. 결국 취소하기를 몇 번, 딸은 "내가 여행만 가려하면 아빠가 아파지니 차라리 안 가겠다"며 아빠의 곁을 지키기로 했다. 그렇게 아빠와 막내딸은 생의 마지막 내리막길을 가장 가까이서 함께 걸었다.
우리는 아빠를 단 한 순간도 고독 속에 두지 않기로 약속했다.
아주 잠깐 편의점에 가거나 예배를 드리러 가는 시간을 제외하곤, 딸과 나는 아빠의 손과 발이 되어 그 치열한 고통의 현장을 지켰다.
그런 딸이었기에 장례식장에서 막내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내가 막내라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 어쩌지. 나는 아빠의 마지막 사진을 내 가슴에 꼭 품고 싶은데.'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던 걸까.
발인을 앞둔 이른 아침, 집에서 자고 아침에 오기로 한 임신 중인 큰딸 내외가 빈소에 도착하기 전에 목사님이 조금 일찍 오시면서 기적 같은 순서가 돌아왔다.
결국 막내딸이 영정과 위패를 가슴에 안고 2층 빈소에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딸은 내게 다가와 아이처럼 귓속말을 했다.
"엄마, 막내라 내게는 기회가 안 돌아올 줄 , 못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아빠 사진을 들었어요. 너무 기뻐요."
아빠의 영원한 부재를 슬퍼하면서도, 아빠를 모실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아이 같은 진심은 화장장에서도 그랬다.
과호흡으로 힘들었던 딸은 병원으로 가기를 꺼려했다.
병원으로 가면, 아빠가 추모공원에 안치되는 것을 못 볼까. 아빠와의 마지막을 잘 마치고자 그의 몸을 애써 다스렸다.
사위가 영정을 들자,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아빠의 유골함은 자연스럽게 막내의 품으로 안겼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속 소원이 하나씩 이루어질 때마다 딸은 신기해하고 감사해했다.
아빠의 절친이 운전하는 리무진 안, 우리는 유골함을 번갈아 안으며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울다 웃다 하며 아빠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그 길 위에서, 막내딸은 아빠가 자신에게 준 마지막 선물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어쩌면 아빠는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
당신의 곁에서 휴직까지 하며 손발이 되어준 막내의 예쁜 마음을.
그래서 마지막 가는 길, 오직 막내만이 채워줄 수 있는 그 자리를 기꺼이 비워두신 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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