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축하하러 갔다가 축복받고 온 날

어느 하객의 특별한 서울 여행

by 본비 은혜

주말 아침, 평소보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정이 많기로' 소문난 분의 막내아들 결혼식이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열리는 날이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하객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까지는 족히 한 시간 반. 이른 아침이라 미처 끼니를 챙기지 못한 하객들이 태반일 터였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혼주 가족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건넸다.

봉투를 열어본 순간, 신선한 충격이 밀려왔다. 보통의 예식 버스에서 마주하는 백설기나 샌드위치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애기족발과 갓 쪄낸 송편, 싱싱한 방울토마토, 그리고 입가심용 커피와 물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족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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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경한 조합에 당황한 것도 잠시, 족발을 좋아하는 터라 입안에 넣은 족발은 이내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로 변해 기분 좋은 행복감이 들었다. 하객들의 허기를 가장 든든하게 채워주고 싶었던 혼주의 푸근한 마음이 그 고기 한 점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길 위에서 보낸 한 시간 반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며 멀리 보이는 능선을 따라 곧 올봄을 기다리는 대화를 나누며, 검정 비닐봉지에 담긴 그 투박하지만 진한 '정'을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명동의 활기찬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명동의 활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기억의 태엽이 12년 전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6월 15일, 그날도 누군가의 자제분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양평으로 향했던 초여름이었다.

진작에 약속을 한 우리는 예식을 마치고 '서울 여행'을 떠났다. 이름마저 예쁜 양평 오빈역에 차를 세워두고, 청량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왕십리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슈퍼맨>을 보고자 했지만 매진으로,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향해 빈티지 속에서 마주한 활기와 고려대 앞 인도 요리점 '베나레스'의 이국적인 향기에 취했던 날. 무거운 DSLR 카메라로 서로를 향하여 셔터를 누를 때마다, 우리의 연애 세포는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돌아오는 길, 청량리역의 긴 줄 끝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샀던 로또는 비록 꽝이었지만, 손에 들린 두 팩의 '서울표 체리'만으로도 세상 부러울 것 없던 그날. 오빈역의 별스럽지 않은 풍경 속에서 찍어준 내 사진이 유독 예뻐 보여 오래도록 마음 한구석에 간직해 왔더랬다.

그날의 일기장 끝머리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님의 결혼식 덕분에 내가 더 행복한 하루였다"라고.


단조로운 일상을 조용히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명동 한복판 카페에 앉아 있는 지금, 나는 다시금 그때와 닮은 행복을 마주한다.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러 온 길 위에서, 정작 나는 잊고 있던 설렘과 망중한을 선물 받는다.

2026년 3월 14일. 축복의 박수 소리를 뒤로하고 예식장을 나섰다. 명동의 복잡한 골목 사이, 마치 보이지 않는 깃발을 따라가는 여행객들처럼 일행 중 명동에 익숙한 그녀의 뒤를 쫓았다. 한때는 나도 서울 시민이었건만, 오랜만에 마주한 명동의 골목은 도무지 옛 기억의 조각과 맞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낯선 설렘 속에 걷다 보니, 야트막한 언덕 위로 당당하게 솟은 명동성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와...!"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동안 몇 번이나 시도를 했으면서도 늘 문턱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곳. 한국 최초로 지어진 고딕 양식 벽돌 성당이 왜 그토록 나를 끌어당겼을까. 수많은 시와 소설, 에세이 속에서 시대의 아픔을 보듬던 그 거점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 마음속 '가보고 싶은 곳' 리스트의 한 줄이 비로소 지워졌다.

고개를 들어 뾰족한 지붕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다 성당 안으로 발을 들였다. 유럽 대성당의 화려한 프레스코화는 없었지만, 그곳엔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화려함 대신 가장 낮은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목소리 낼 곳 없는 이들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민주주의의 성지. 그 숭고한 역사가 벽돌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듯했다. 내 구두 소리가 정적을 깨울까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레 앞자리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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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동 악기상가의 육교를 건너 발길은 자연스레 익선동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과 가장 현대적인 감각이 공존하는 곳. 화이트데이를 맞은 연인들의 설렘과 여행객들의 활기가 좁은 골목마다 꽉 차 있었다. 그 활기찬 틈바구니에서 우리도 유유자적 골목을 유영했다.

길게 늘어선 줄 끝에서 만난 수플레는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맛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부드러움이었다.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 달콤함. 여행의 완성은 역시 식도락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달으며, 우리는 그 특별히 달콤한 사치를 충분히 만끽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기도 전에 봄날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낭만을 굽는 이방인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실내의 가장 따스한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배는 이미 충분히 불렀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고기를 굽는 시간은 언제나 새로운 즐거움으로 채워진다.

나는 기분이 좋아지면 촌스러운 상황극을 즐기곤 한다. 멋진 사람을 보면 짐짓 시치미를 떼고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서 오셨어요?"라고 묻는 것. 집에서 딸아이들을 웃게 하려 시작한 이 장난스러운 버릇이 그날의 식당에서도 불쑥 튀어나왔다. 이미 그들은 나를 너무 잘 안다.

오늘은 옆에 있던 그녀가 훅 치고 들어왔다.

"어디서 오셨어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명동이요~"

그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테이블 끝에서 환한 불꽃을 단 케이크가 등장했다. 식당 안으로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누구 생일이지?' 당황한 나를 향해 모두가 웃으며 말했다. 내 주민등록상 생일인 3월 15일을 축하하기 위해, 잠시 늦게 온다 싶었던 일행 두 명이 익선동 골목을 헤매며 이 케이크를 준비해 온 것이었다.

"명동에서 온 사람"이 된 나는, 그렇게 서울 한복판에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생일상을 받았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생일 축하 노래를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예기치 못한 날에 마주한 서프라이즈. 나를 위해 하나가 된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스러워,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웃으며 고기를 씹는데 자꾸만 목이 메어와 결국 화장실로 몸을 피했다.

행복하게 살라는 따듯한 응원 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났다. 거울 속의 나는 눈화장이 번진 채 서 있었다. 마음 한구석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던 내 생일날 위로, 오늘이라는 눈부신 하루가 겹쳐졌다.


"잘 태어났다. 정말 잘 태어났다!"


화장실 거울 속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나는 다시 한번 힘내어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고, 나는 열심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른 봄의 찬 바람이 얇은 옷깃 사이로 파고들었지만,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오른 기쁨 덕분에 서울의 저녁 풍경은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 그와 함께 걷지 못했다고 서글퍼하는 내가 아니라, 혼자서도, 혹은 새로운 이들과도 이 거리를 온전히 누릴 줄 아는 성숙한 나를 마주하는 일이 참 좋았다.


자기 얘기를 꼭 써달라고, 한 줄 넣어달라고 하며 갑자기 상황극 신혼부부 새댁으로 변해, 노래는 한복을 입고 해야 한다고 해 모두를 웃겨준 참한 그녀와 이 자리에서 만큼은 직함은 빼달라고 해 실컷 들었을 오빠. 가이드를 자청했던 T의 도시녀, 그가 만난 적 없지만 늘 내 이야기 속에서 친밀한 그의 이쁜 후배 둘과 축하곡을 소프라노로 불러준 눈물이 나와 같이 많은 F의 그녀와, 낙오자 없도록 잘 챙겨준 준비된 낭만의 그.

내 곁에 있는, 나를 바라봐주는 그들로 충분히 기쁜 하루였고, 가장 뜨겁고 행복한 하루를 선물 받았다.


추억은 낡은 것을 지우고 덧칠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중한 기억 곁에 또 하나의 빛나는 기억을 나란히 추가하는 일이다.

오래전 어느 날 일기장에 적었던 문장을 오늘 다시 꺼내어 본다.
"님의 결혼식 덕분에 내가 더 행복한 하루였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더 많이 웃으며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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