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르핀 은혜로 살아가기
오랫동안 나의 하루는 새벽 예배로 시작되었다. 이른 새벽 성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때로 고단했지만, 그 시간은 나를 성장시킨 가장 큰 동력이자 즐거운 일상이었다.
계절마다 새벽의 표정은 달랐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새벽예배 후 식탁에서 책이나 그가 가져온 신문을 읽으며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새순이 돋는 봄이면 여주보를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날이 더 따스해지면 정원 흙 속에 숨은 연두색 생명들을 찾아내느라 바빴고, 여름이 다가오면 정원에 꽃을 심거나 밭을 일구고 무언가를 심는 기쁨에 매료되었다. 1분 1초를 쪼개어 쓰는 아침 시간이 어찌나 즐거웠던지, 가까운 직장임에도 늘 출근 시간에 겨우 맞춰 들어갈 정도였다.
이번 사순절, 나는 더 깊은 새벽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 특별새벽기도회 특송을 위해 평소보다 이른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예배 후 각자의 기도를 마치고 성전을 나서니 어느덧 시계는 6시를 훌쩍 지나고 있었다.
문득 이전의 내 아침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여주보를 걷고 있을까, 정원을 서성이고 있을까, 아니면 분주히 주방 앞을 지키고 있을까. 부지런히 무언가를 채우고 가꾸던 익숙한 아침 대신, 오직 기도와 침묵으로 채워진 이 고요한 시간이 나에게는 조금 낯설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 이전과는 다른 농도의 낯선 봄을 마주하고 있다.
새벽 특송을 마치고 받아온 떡과 두유로 허기를 달래고, 밀려드는 잡념을 털어내려 지하 헬스장으로 향했다. 예전의 나처럼 다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운동을 하며 몸을 깨웠다. 시계를 보며 허락된 최대치의 시간을 채우고 나니 비로소 뿌듯한 기운이 전신에 감돈다. 평소보다 이른 출근길, 직장에서의 시간은 계절의 변화와 상관없이 늘 그랬듯 잔잔하고 평온하게 흘러갔다.
그리움은 따스한 오후, 일이 있어 서두른 조기 퇴근 중에 마주한 '낯선 봄'에서 시작되었다.
나에게 봄은 '귀가를 서두르는 계절'이었다. 정원에서의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했기에 웬만해서는 약속도 잡지 않았다. 퇴근하자마자 우아하고 고운 옷을 벗어던지고, 기꺼이 '정원의 일꾼'을 자청했다. 흙을 만지고 싹을 틔우는 일은 지치지 않는 기쁨이었다.
남편은 퇴근 후에도 쉬지 못하는 나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제발 좀 쉬라"며 타박 섞인 걱정을 건넸다. 하지만 내가 쉬면 그 잔일들이 오롯이 그의 몫이 될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를 아끼는 마음으로 평일의 정원을 지켰다. 주말이면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나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던 그의 정직한 노동이 있었다. 밖에서 일하다 그의 귀가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던 그 찰나의 환희. 우리는 그렇게 적당히 힘들고, 아주 많이 뿌듯한 농촌의 삶을 일구어 왔다.
오늘 마주한 봄이 낯선 이유는, 아마도 그 뜨거웠던 정원 생활의 풍경 속에 지금의 내가 잠시 멈춰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끝에 묻던 흙의 촉감과 남편과 나누던 다정한 눈 맞춤이 그리워지는 오후다.
관계심리학자 에스더 페렐은 관계란 결코 산술적인 50 대 50일 수 없다고 했다. 각자의 에너지가 다르기에 누군가 10일 때 다른 이가 90을 보태고, 내가 70일 때 상대가 30을 채우며 그렇게 합(合) 100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돌이켜보니 그와 함께한 지난 32년에서 나는 늘 30의 에너지였고, 그는 자그마치 70의 에너지를 쏟아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 지극한 헌신에 그는 얼마나 지쳤을까.
일상은 오히려 사소한 순간마다 그의 부재를 증명한다. 시간을 쪼개 쓰던 바쁜 아침, 쓰레기통을 비우다 문득 멈춰 선다. 집안의 쓰레기통이 찰 때쯤이면 말없이 비워주던 손길, 설거지를 마칠 때면 어느새 음식물 쓰레기를 치워주던 그 다정함이 이제야 사무치게 다가온다. 왕터 집을 떠나오면 조금은 덜 생각날 줄 알았는데, 생활의 구석구석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위해 존재하던 사람이었다.
안개 낀 출근길, 근사한 풍경을 마주하고 습관처럼 사진을 찍다 또 한 번 멈춰 섰다.
"여긴 어디야? 멋지네, 사진 잘 찍었어"라며 다정하게 대꾸해 주던 사람. 내가 보낸 사진을 자신의 카톡 프로필에 올리며 최고의 찬사를 보내주던 사람이었는데.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나눌 단 한 사람이 사라지니, 세상에 대고 할 말이 부쩍 줄어들었다. 낯선 봄의 풍경 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의 깊었던 사랑을 확인하며, 혼자 남겨진 100의 무게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혼자서 이 낯선 사계절을 어떻게 다 보내야 할까.
잘 버티고 있다고 믿으며 앞만 보고 달려온 지 44일. 그러나 마음은 작은 틈에도 여지없이 무너진다. 정면에서 고작 왼쪽으로 5도만 틀어도 함께 웃던 과거의 그가 있고, 오른쪽으로 5도만 돌리면 내일의 어떤 계획도 함께 세울 수 없는 막막한 부재가 나를 덮친다. 그 좁은 각도 사이에서 나는 갈 곳을 잃고 눈물을 쏟는다.
기분이 꿀렁이는 긴 하루 끝에, 차 안에서 소리 내어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5시간을 내리 푹 잤다. 쏟아낸 눈물만큼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던 모양이다.
그래,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이 찬란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이런 아픈 날도 있어야 하는 거겠지.
나에게 봄은 이제 더 이상 정원의 활기가 아닌, 사무치는 그리움의 계절이 되었다.
참 서럽고도, 아름다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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