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있을 손님맞이를 위해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장을 봐왔다.
주방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는데, 샘물호스피스 목사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 원고 독촉이다.
이미 샘물호스피스 월간지 3월호에는 유가족 감사글로 내 글이 실렸다. 어제 잡지를 받아보았느냐는 안부 끝에, 목사님은 내 브런치의 다른 글들도 더 싣고 싶다는 귀한 제안을 덧붙이셨다. 어제는 하루의 고단함이 밀려와 오후에 보내드리로 한 것을 잊고 까무러치듯 잠들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보내드리기로 했던 원고, <32. 그의 존엄과 나의 허기>가 떠올랐다.
3월호에 실린 글을 다시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할수록 문장은 매끄러워졌을지 몰라도, 처음 펜을 들었을 때의 그 담백하고 날것의 진심은 조미료에 덮여 조금 사라진 기분이다. 하지만 목사님의 연이은 요청에 다시 용기를 내어본다.
그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고 싶었던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느껴야 했던 나의 허기. 그 지독하게 현실적이고도 슬픈 기록을 다시금 세상 밖으로 보낼 채비를 한다.
주방의 분주함을 잠시 뒤로하고, '아차차' 하는 마음을 담아 원고를 갈무리해 본다.
아파트의 마른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서재. 컴퓨터 앞에 앉아 밀린 메일을 보내고 창밖을 보니 따듯한 햇살이 완연한 봄이다. 예배를 마치고 형님 댁에 맡겨놓은 강아지 '왕이'와 산책을 하고, 왕릉 해설사 부스에 들러 안부를 나누는 동안에도 내 곁엔 봄이 머물러 있었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식재료를 정리하려는데, 문득 구석에 놓인 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그 꽃을 살 때만 해도 남편에게 다녀오리라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은 야속하게도 남편을 향한 내 걸음을 자꾸만 붙잡아 세웠다. 마음속엔 늘 그가 살고 있었지만, 정작 그에게로 향하는 길은 일상의 소란함에 가려 잠시 잊고 지냈다.
나는 서둘러 앞치마를 풀었다. 꽃 몇 송이를 골라내 포장을 하며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그가 이 싱싱한 꽃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지퍼백에 물을 담고 작은 도자기 병을 챙겨 나섰다. 며칠을 고민해도 추모공원의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꽃을 오래 보존할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 근사한 아이디어를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내 '또 남에게 의지하고 있구나' 싶어 쓴웃음이 났다.
식탁 위엔 남은 포장지와 리본, 가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지만 마음이 급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쳤다. 들뜬 마음으로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분명 기쁜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는데, 그를 떠올리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흐른다. 눈치 없는 눈물은 예고도 없이, 주책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솟구친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불리던 '울보'라는 별명이, 쉰 살이 훌쩍 넘은 지금 다시 내 이름 앞에 스스로 붙었다.
봄은 이렇게 화창하게 찾아왔는데, 나의 그리움은 여전히 그 봄볕 아래서 툭하면 젖어들고 만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왜 아무도 오지 않을까. 하염없이 나만 기다리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가만히 머물러 있을 그에게, 나는 세상 밖의 조잘조잘한 이야깃거리를 한가득 물고 가야 했는데, 미안하게도 나는 내 생활이 바빴다. 예전처럼 내 주변의 것들을 챙기느라, 또 그를 놓쳤다.
"미안해요, 여보. 정말 미안해." 입버릇처럼 또 미안하다는 말이 터져 나온다.
낮에 마트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입구로 향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여보!"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다정하던지. 하지만 나는 시야를 흐리지도,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은 채 앞만 보고 걸었다. 내가 아니니까, 절대 뒤돌아보지 말자고 다짐하며 씩씩하게 마트로 향했다. 이제 '여보' 소리가 들려도 뒤돌아보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나를 불러줄 여보도, 내가 부를 여보도 곁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아니까.
가득 장을 봐도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줄 그가 없어, 대신 딸아이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애써 태연함을 담는다. "엄마가 장을 많이 봤어, 좀 내려와 줄래?"
새색시 시절, 무서웠던 시아버님은 '오빠'라는 호칭이 무엇이냐며, 족보에도 없다며 엄히 꾸짖으셨다. '누구 아빠'나 '여보'라고 부르라는 명에 하루아침에 호칭은 정리되었지만, 갓 결혼한 내게 '여보'는 너무 어른스러운 옷처럼 어색하기만 했다. 그래서 차마 다 부르지 못하고 끝에 '야'를 붙여 "여보야"라고 불렀던 그 시절.
문득 그 옛날의 "여보야"를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다.
"여보야, 기다리고 있어. 내가 금방 갈게. 자기가 좋아했던 청귤 주스 챙겨가고 있어. 이거 좋아했잖아. 그래서 내가 양 권사님한테 부탁했었지. 아직 집에 남아 있어. 다음에도 또 가져올게.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랑하는 내 여보야! 금방 갈게."
속으로만 실컷 불러보는 '내 사랑하는 여보야' 앞에 노란 프리지어 한 다발을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참아왔던 익숙한 수다를 쏟아낸다.
그리움은 이렇게 달래고, 또 풀어내는 것이리라.
여보, 조만간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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