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매대를 뒤적대던 내게 이 작품은, 북커버만으로는 장르를 추정하기 힘든 정체성이 모호한 책 한 권으로 비쳤다.
첫인상은 그랬다. 허나
책을 덮은 이후에는 더 큰 혼란에 빠졌으니 이유인즉, 한 학자의 일대기가 작가 자신의 인생과 묘하게 얽혀있어 갸우뚱하던 차,
술술 읽힐 만큼의 흥미를 끌지는 않았던 초반의 위인전 같은 서술이 점점 추리소설처럼 궁금증을 자아내며 속도에 박차를 가하며 읽혔더랬다.
혹시라도 책을 보실 분이라면 무지성으로 편견 없이 순수하게 읽으시라 조언하고 싶다. (이미 글을 읽고 있다면 이쯤에서 멈춰주세요..)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스포일이다.
그렇다. 이 책은 '스포일'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간 문학이 아닌 작품에선 접하지 못했던 생경한 구조의 반전도서다.
초반에는 19세기 물고기 분류에 집착 어린 열정을 쏟아 당시 인류에 알려진 1/5의 어류에 이름을 붙였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불굴의 의지와 그의 극한의 시련을 극복해 내는 극적인 삶의 그릿(GRIT)을 찬양하는 듯한 메시지로 흐르는 듯 하였으나... 스탠포드 대학에 동상이 있을 만큼 많은 이들이 존경해 마지않던 그의 공적을 치하하는 듯했던 교훈적 묘사는, 마침내 그가 열을 올렸던 우생학에 대한 오류와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강화하며 '열성 인간' 제거에 힘썼던 한 인간의 광기 어린 역사에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추앙받던 위인을 철저히 짓밟는다.
극단적 우생학으로 점철된 그의 삶이 민낯을 드러내며 평화상까지 수상한 그가 전쟁을 반대한 이유가 사실은 그로 인해 희생될 '인재'들을 대체해 세상에 '유전적 부적합자'들 만이 남게 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음을 알게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위인에 대한 배신감에 경악하게 되고, '우생학적 강제 불임화'를 법제화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가 생전에 명망 있는 삶을 누렸다는 데서 작가는 격노한다.
혼돈과 미지의 세계인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고 하나의 계층구조로 획일화함으로써 인류는 혼돈 속에서 명료함과 뿌듯함을 느꼈을 지 모르지만 그 인간이 명명한 분류체계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때문에 당연시했던 양서류, 포유류 같은 '어류'라는 분류 체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음에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비늘이 있는 물고기 형태의 유사성만으로 '어류'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상어의 폐기관은 오히려 인간을 닮았음을 인정해야 하는 오류의 더미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
유전자에서 필수불가결한 다양성을 제거하려 했던 우생학자들의 자기기만에서, 인간의 편의에 의해 규정지워진 그 체계 자체의 오류를 인정하게 되면 인간의 오만에 절로 숙연해지는 것이다.
지구상의 생물을 실제 검토한다면 우리가 무시하던 까마귀는 인간보다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며, 도구나 언어사용에 있서도 뇌의 큰 크기면에서도 유일한 존재가 아닌 한낱 인간이, 자신들을 가장 우월한 꼭대기에 두는 단 하나의 '계층구조'를 그린다는 것에 무리수가 있었다.
어떤 과제에서 우리보다 뛰어난 부분이 동물에서 발견되면, 인간은 그것을 지능이 아닌 본능으로 치부하며 깍아내리곤 하는데 이를 '언어적 거세'라 이른다. 이는 우리의 언어로 동물들의 중요성을 박탈하는 방식이며 인간이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에 앉는 수법일 뿐이었다.
한 저명한 분류학자가 한평생 바쳤던, 극한의 시련도 극복케 했던 그 사물의 '범주'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건 혼돈..
작가 밀러는 '범주'를 부수고 나온다. 그녀의 말대로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며 과학은 진실을 비추는 횃불이기보다는 도중에 파괴도 일으키는 무딘 도구일 뿐이다.
작가 밀러는 경고한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고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두려워 말 것을.
하나의 범주란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의 경우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을 독자에게 깨우친 작가답게 그 위험한 허구의 사다리를 쪼개고 나온 듯 작가는 떠난 이성의 자리에 동성의 애인을 대체하며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힌다. 이 부분이 이 책의 반전만큼 충격적이었던 나는 아직 당연시된 범주의 틀에 갇혀있는 것이 자명하다
그러한 문화충격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처녀작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색다르고 독특한 글의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경탄해 마지않게된다. 처녀작임이 오히려 놀라울 뿐.. 이 점에선 굳이 책날개의 방송계 퓰리처상이라는 피버디상 수상여부나 과학전문기자라는 타이틀도 필요치 않을 것 같다.
또한 무엇보다도 판화의 에칭과 같은 거친 선들로 묘사된 책 속의 일러스트가 책의 미스터리함을 배가시켜줌을 잊지 않고 싶다.
글에 따르면 무언가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됨으로써 '실재'가 되버린다.
최근에는 환경론자들 사이에서 애초에 하등한 인간의 먹을거리에 지나지 않는 '물고기'라는 이름을 '물살이'로 바꾸자는 주장이 일고 있다고 한다.
나는 또 어떠한 오류들을 굳건하게 믿고 의지하며 살고 있었을까 자꾸만 되묻게 되는 매력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