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지리의 힘 1 출간 이후 오랜 기다림 끝 2권 소식에 냉큼 주문해서 읽었더랬다.
전 편에서는 미국이 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지리적 이점과 운, 지리적 우세로 파키스탄보다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인도, 인위적 국경선이 분쟁의 씨앗이 된 중동, 유럽이 만든 지정학의 피해자가 된 아프리카, 지리상 강대국들의 경유지가 되었던 한국 등을 다루며 지리라는 요소가 어떻게 세계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는지 설명했다면,
2편에서는 소련과 미국의 양극구도에서 벗어나 여러 열강들이 경쟁하는 다극화 시대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작에서 이미 러시아를 서술할 때 중립, 친서방, 친러시아 진영을 구분하면서 소비에트 연방 붕괴가 금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말했던 푸틴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하던 조지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세 나라의 나토가입은 사실상 전쟁발발로 이어질 수 있음도 경고했었다. (소름 돋게 이는 곧 현실이 되었다.)
러시아의 아킬레스 건인 부동항 부재로 크림반도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세바스토폴 항구가 있는 데다 이미 2014년에 친러시아 정서가 강한 크림반도를 합병했기에, 우크라이나의 서방세력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푸틴의 심기를 거드렸던 것.
러시아가 노드스트림 (대규모 가스공급 파이프)등 연료를 무기 삼고 있고 키예프공국에서 갈라진 동일한 역사의 뿌리, 인접한 국경 등의 복잡다단한 요인으로 현재 전쟁의 흐름이 그리 순조롭게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점이 굉장히 우려스럽다.( 이것이 기우가 아니었던 것이 지금껏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해 궁금하다면 1편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작이 개괄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신간은 오스트레일리아, 터키, 이란, 사우디, 에티오피아, 스페인을 비롯하여 미래의 분쟁 소지가능성을 지닌 우주에 대한 각축전까지를 다루고 있어서,
각 국에 대해 렌즈를 좀 더 조이고 살펴보는 기분이라 생소한 부분도 많았고 상당히 자세하고 두껍기에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평화롭게 보이는 나라조차 밀고당기기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루어지고 있고 분쟁의 소지가 산재해 있다는 것을 들여다보자니 힘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특히나 일대일로를 표방한 중국이 에티오피아에 전기철도 등 건설인프라를 지원하며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확보하는 등 인식하지 못한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야심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 두렵다.
에티오피아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력발전용 댐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이것이 이집트가 지리감옥에 갇힐 수 있는 위협 요소가 되며, 과거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터키조차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짐짓 놀랐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것처럼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며 조용히 원대한 꿈을 펼치는 각축전의 현장에서 외교 관계는 참 까다롭고 어려운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단순논리에 기대기보다는 좀 더 깨어있어야겠다는 위기의식도 생겼다.
'이념은 스쳐가도 지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서문의 타이틀처럼 '지리'라는 각도에서 바라보는 국제정세 또한 아슬아슬하지만 흥미로웠다.
(저자인 팀마샬은 전 BBC기자이자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인데요. 기자출신만이 갖는 무기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무거운 국제 정세를 서술하는 데도 지루하지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