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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달리다(1)

알티플라노 고원

by 장성순

알티플라노 고원의 우유니 마을 / 3월 4일 화요일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알티플라노 고원은 페루, 볼리비아, 칠레에 걸쳐있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고원이다. 우유니 소금사막도 이 고원 위에 있다. 우유니 지역이 평탄해서 알티플라노 고원을 가로지를 때 많이 이용되는데 우리도 이 길을 달렸다.

여행에 앞서 우유니 마을에서 잠시 머물며 시장도 보고 여유를 가졌다. 과일시장은 창고 같은 건물 안에 있었는데 과일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싼 편이다. 먹는 취향이 소심한 나는 익숙한 사과 몇 개만 샀다.


IMG_6304-2.jpg 과일가게의 모습



우유니의 거리 풍경은 썰렁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그런 거리 한편이 시끌해지더니 한 무리의 악단이 연주를 하며 퍼레이드를 한다. 같은 옷을 입은 것으로 봐서는 한 단체인 것 같은데 연령대는 다양하다.

남미 사람들은 이런 행사를 좋아하나 보다. 리마에서는 대규모의 퍼레이드를 봤고 라파즈에서는 골목을 지나가는 작은 규모의 행진을 만났는데 여기서 또 만나게 되었다. 구경꾼도, 손뼉 쳐주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꽤 진지하게들 하고 있다. 악기를 메고 나와 연주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닌가 싶다. 별로 크지도 않은 이런 마을에 이 정도 규모의 악단이 있다는 것조차도 놀랍다.


IMG_6280.JPG 건물은 낡고 거리는 썰렁하다.


IMG_6327-2.jpg 거리를 행진하는 악대


알티플라노 고원을 달리다

차는 알티플라노 고원을 달린다. 붉은 기운을 띤 황량한 대평원이 이어진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광막한 들판은 창조주 비라코차가 갖 빚어낸듯한 태초의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수만 년 전의 시간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시간여행에 예상치 못한 묘한 감동이 밀려온다.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안데스 산맥은 이곳이 얼마나 높은 곳인지를 상기시켜 준다. 해발고도가 4000미터에 육박하니 이 높이에서 보는 산봉우리는 낮게 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봉우리가 날카롭지 않고 완만한 편이라 언덕처럼 보인다.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건조한 평원을 한참 달려가다 보면 키 낮은 관목들이 띄엄띄엄 보이고 초록빛이 많아지더니 발그스름한 꽃밭이 넓게 펼쳐진다. 좀 더 가면 주황색과 노란색 꽃도 피어 있는데 염색한 옷감을 펼쳐놓은 듯하다. 퀴노아 밭이란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널찍히 자리 잡은 예쁜 색깔의 퀴노아 밭이 많아진다.

그런데 퀴노아 밭을 지나고 한참을 달려도 농가가 보이지 않는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퀴노아는 심어놓기만 하면 손이 가지 않는 작물이라 먼 곳에서 와서 심은 후, 추수하러 오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4000년 전부터 재배된 작물답게 야생의 생존력이 강한가 보다.


IMG_6348-2.jpg 붉은 퀴노아 밭


건조한 지역을 지나고 나면 축축하고 초록색을 띤 들판이 나타난다. 들판에 라마가 한두 마리씩 보이더니 숫자가 늘어난다. 제법 많은 라마 무리가 군데군데 모여 초록빛 지표식물을 뜯고 있다. 대자연 속에 방목되는 라마들이다. 야생에서 뛰어놀던 예전 모습 그대로 여유롭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귀와 목, 등에 알록달록 예쁜 장식을 달고 있다. 이는 주인이 있다는 표시이며 주인들은 자신의 라마에게 정성 들여 장식을 해준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동물도 가족이라 생각하고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보살피는 걸까? 혹은 전통적으로 동물에 대해 특별한 애정과 공감을 느끼는 걸까?



IMG_6365-2.jpg 예쁘게 치장한 라마들


IMG_6382-2.jpg 대자연과 함께 하는 라마


저 멀리 불그스름한 기운을 띤 화산석들이 줄지어 서서 거대한 언덕을 형성하고 있다. 붉은 화산석 언덕의 모습은 황량하면서도 화산 자체의 뜨거움이 숨어있는 듯하다. 아이슬란드의 잿빛 황량함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멀리서 보이던 붉은 화산석 언덕이 가까워진다. 화산지형 바위들이 이곳에 다 몰려있나 싶을 정도로 큰 규모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화산석을 가까이에서 보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차에서 내린다. 비가 맞기 싫어서 뭉기적대다가 나도 결국 내렸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화산석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IMG_6386-2.jpg 붉은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화산지형


IMG_6398-1.JPG 가까이서 본 화산석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알티플라노 고원을 오래 달려 우유니 소금사막의 외진 곳까지 들어왔다. 칠레로 가는 길목이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숙소에 도착할 무렵 주룩주룩 쏟아진다. 숙박시설이 열악하다고 예고했으나 우리 방 6호실은 심각했다. 좁은 객실에 싱글 침대 두 개가 기역자로 배치되었고 욕실은 세면대와 변기, 샤워꼭지 하나가 전부다.

짐을 푸는 중,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불안하게 느껴지더니 천정에서 물방울 하나가 떨어진다. 그리고 순식간에 똑똑똑 간격이 좁아지더니 후드득 소리로 바뀐다. 나의 다급한 구조요청에 직원들은 익숙한 듯 대야와 대걸레를 들고 들어온다. 대야에 떨어지는 물소리를 심란하게 듣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자 아예 물줄기를 이루며 줄줄 흘러내려 침대를 적신다.

방을 바꾸는 소동을 겪고 나서야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5시 출발이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여행 중 겪은 가장 황당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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