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즈에서 우유니까지는 짧게 비행기를 타고, 우유니에서는 랜드크루져로 갈아탔다. 차를 보아하니 가는 길이 심상치 않다. 황량한 들판, 버려진 듯 스산한 거리, 정비되지 않은 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아름다우니 모든 게 용서된다. 잠시 차에서 내리면 공기는 신선하고 시야가 탁 트여 가슴이 시원해진다.
드디어 소금 사막에 도착했다.
소금 사막은 다져진 눈길처럼 희고 단단한데 끝도 없이 이어진다. 거친 도로를 달려온 랜드크루져는 소금 사막 위를 달린다. 거대한 자연의 손길이 쓰다듬고 간 듯 굴곡 없이 매끈하니, 차든 오토바이든 달리는 곳이 길이다. 그래서 차와 사람 모두 자유를 만끽한다. 그 허허로운 자유로움에 누구든 한 번씩 탄성을 지른다.
하얀 벌판 위에 자를 대고 그은 듯 선명한 지평선이 아득히 멀고, 하늘에 가득한 구름은 시시각각 색과 모양을 바꾼다. 회색구름이 몰려와 안개비를 흩뿌리다 바삐 제 갈길을 가고 나면 몽실몽실한 흰구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걸림 없는 비어있는 태초의 공간 속에 바람도 구름도 자유로우니, 오가는 바람을 타고 구름도 끊임없이 오며 가며 뭉쳐지고 흩어진다. 넓은 하늘을 노니는 우유니의 구름은 자연이 연주하는 시각적 교향곡이다.
다져진 소금 땅을 한참 달려가면 지표면에 물이 고인 곳에 도착한다. 물은 지표면을 코팅하듯 얇고 넓게 뒤덮고 있어 거대한 거울이 된다. 그래서 이곳을 지구상 제일 높은 곳(해발고도는 3600m 이상이다)에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고 한다. 티 하나 없이 매끈하게 펼쳐놓은 표면에는 하늘의 구름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지구별을 감싸고돌며 유랑하던 구름들은 희고 평온한 고원에 이르러 잠시 쉬어볼까 발을 살짝 디뎠다가 고요한 소금물 속으로 스며든 게 아닌가 싶다. 그 속에는 푸른 하늘 또한 함께 하니 구름은 그 하늘을 안고 위안을 삼으리라.
소금사막이 워낙 넓고 규모가 커서인지 사방을 바라보면 서로 다른 날씨다. 남쪽하늘에는 하얀 구름과 햇살이 빛나는데 북쪽은 먹구름이 밀려와 지평선을 이룬 산등성이에 닿았다. 먹구름은 침략자처럼 동쪽 하늘로 내려오더니 결국 빗방울을 뿌리고 비바람이 몰아친다. 순식간에 기온이 훅 내려가 초가을이 된다. 그리고 잠시 후 면 다시 햇살이 나타난다.
점심때가 되자 허허벌판 같은 소금사막 가운데 천막을 치고 점심을 먹었다. 좌우를 돌아보면 온통 소금사막이니 천막은 거대한 자연 속에 구축된 손바닥 만한 인위적 영역이다. 그곳에는 꽃과 와인과 음식이 있다. 그 부조화와 생경함을 경험하는 게 이 이벤트의 노림수인가 싶다.
식사는 비교적 맑은 날씨에 시작되었다. 먹는 중 비가 뿌리고 바람에 천막이 마구 흔들리기도 했으나 잠시 후에는 비가 가늘어졌다.
점심식사 후 소금호텔로 돌아와 쉬면서 일몰 보러 갈 준비를 했다. 소금호텔은 거대한 소금 조각품이다. 사방이 소금이다. 곳곳에 소금으로 만든 조각장식이 있고 계단, 계단 난간, 벽과 바닥이 모두 소금 벽돌이다. 벽돌에 가로로 난 검은 선들은 퇴적과 증발을 거듭한 세월의 흔적이다. 객실도 문과 창, 욕실의 일부시설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금이다. 벽면은 소금 특유의 질감을 살려 원 모양, 홍학 모양등을 부조로 새겼다. 침대는 소금 벽돌을 쌓은 후 그 위에 매트리스를 올리고 침대 머리에는 소금덩이를 매끈하게 다듬어 헤드를 세웠다.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면 소금으로 만든 소파와 테이블이 있다. 온통 소금으로 둘러싸인 이 속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내 몸도 조금 짭짤해질 것 같다.
우유니는 오래전 지각 변동으로 바닷속 땅이 솟아올라 안데스 산맥을 형성하면서 고원지역에 갇힌 바닷물이 만들어낸 거대한 소금지대이다. 이 지천의 소금은, 그 바닷물이 수만 년의 세월을 증발하고, 비가 오고, 다시 증발하는 과정을 하염없이 되풀이 한 결과물이다. 인간들에게 발견되고, 사용되고, 몰려와 구경하기까지 그 긴 세월의 두께를 차곡차곡 쌓아 거대한 소금제국을 건설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소금 벽돌들은 소금제국이 건설한 역사의 한 단면인 셈이다.
늦은 오후가 되면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면서 자박하게 깔린 소금물 위로 선명한 반영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재미있는 반영사진을 많이 찍는데, 우리를 싣고 온 랜드크루져 기사들은 이 방면에 이골이 난 전문사진가다. 차 트렁크에서 준비해 온 소품을 꺼내고 포즈를 알려준다. 그래서 우리도 누구나 찍고 간다는 그 사진들을 전문사진가들이 요구하는 매뉴얼에 따라 찍어본다. 누군가는 열심히, 누군가는 소극적이지만 이 멋진 풍광 속에 자신을 담아놓으려는 의지는 모두 비슷했다.
이곳저곳에서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고 서로를 구경하며 아이들처럼 맘껏 깔깔거린다.
그 북새통에서 몇 발자국만 옮겨 고개를 돌리면 고즈넉이 저물어가는 우유니의 풍광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서쪽 하늘 끝으로 빛이 몰려온다. 온누리를 가득 채웠던 빛이 슬금슬금 내려와 하나로 뭉쳐진 듯 구름 사이로 빛을 내뿜는다. 호수 바닥에 떨어진 빛의 잔재들은 금속성 광채로 번쩍인다. 지평선 가까이 다가선 태양은 어지러운 구름을 젖히고 얼굴을 내밀며 오래된 잉카인의 인사를 건넨다. '다음에 또 만나요. 이 세상에서든 또 다른 세상에서든' 그리고 느린 듯 빠르게 빛의 잔재들을 거두어들인다.
우유니 소금사막에 어둠이 내린다. 저 멀리 지평선을 따라 인간의 불빛이 하나 둘 켜져 목걸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웃고 떠들던 관광객과 그들을 태운 지프차는 어둠에 쫓기듯 달려 인간들의 불빛을 향해 달린다.
그리하여 이 드넓은 공간에 다시 고요가 찾아오고, 하늘에서 내려온 구름들은 밤바람의 한기에 몸을 떨며 방랑자의 그리움에 취해 잠을 이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