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거부하는 숟가락
셋째 날 아침, 민희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주방에 섰다. 어제 김치볶음밥의 성공이 용기를 주었다.
오늘 메뉴는 된장찌개와 생선구이, 그리고 시금치나물이었다.
"오늘은 고등어구이 어떠세요?" 민희가 정희 씨에게 물었다.
"음... 고등어요?" 정희 씨의 표정이 조금 애매해졌다.
"왜요? 문제가 있나요?"
"준호 씨가 생선을 잘 못 드세요. 특히 고등어 같은 기름진 생선은..."
민희는 첫날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준호 씨는 비린내를 못 견딘다고 했었다.
"그럼 다른 메뉴로 바꿀까요?"
"아니에요. 다른 분들은 생선을 좋아하거든요. 준호만 따로 해드리면 돼요."
"따로요?"
"네, 준호는 계란프라이나 소시지 같은 걸로요."
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12명 중 한 명을 위해 별도 메뉴를 준비하는 것. 병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등어를 굽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라면 냄새를 맡고 달려왔을 민수가 보이지 않았다.
"민수가 안 나오네요?"
"감기 기운이 있어서 늦잠 자고 있어요."
정희 씨가 된장찌개를 저으며 말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식욕도 떨어지시죠?"
"그럴 때도 있어요. 오늘은 좀 간단하게 해드려야 할 것 같아요."
식사 시간이 되자 거주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평소보다 조용했다. 민수가 없어서인지 분위기가 차분했다.
준호가 들어왔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키 큰 남성이었다.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서 감정을 파악하기 어려운 분이라고 들었다.
준호의 자리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메뉴가 놓여 있었다.
된장찌개는 같지만 고등어 대신 계란프라이가 있었다.
준호가 자리에 앉아 음식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준호야, 밥 먹자." 정희 씨가 부드럽게 말했다.
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뒤로 기대앉았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정희 씨가 다가가려 했지만 준호는 더 뒤로 물러섰다.
민희는 당황했다. 준호만을 위해 특별히 계란프라이를 해줬는데 왜 거부하는 걸까?
"평소에도 이렇게 하세요?" 민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끔... 컨디션이 안 좋거나 기분이 언짢을 때 그래요."
다른 거주인들은 조용히 식사를 계속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했다.
"억지로 먹이면 안 되나요?"
"그러면 더 거부해요.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어요."
정희 씨는 침착했다. 하지만 민희는 불안했다. 영양사로서 거주인이 식사를 거부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10분이 지났다. 준호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고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준호야, 그럼 죽이라도 먹을래?" 정희 씨가 제안했다.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저었다.
"물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민희는 답답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시설장님, 이런 경우가 자주 있나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준호만의 방식이에요."
"방식이요?"
"준호는 말로 표현을 잘 못 해요. 대신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죠."
민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 감정 표현이라니.
"그럼... 뭔가 기분이 상한 일이 있었단 말씀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오늘 메뉴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어요."
정희 씨가 준호에게 다가갔다.
"준호야, 선생님한테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말해줄래?"
준호가 민희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된장찌개를 가리켰다.
"된장찌개가 싫어?"
고개를 저었다.
"그럼 계란프라이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민희는 혼란스러웠다. 그럼 뭐가 문제인 걸까?
정희 씨가 갑자기 무릎을 쳤다.
"아! 혹시 고등어 냄새 때문인가?"
준호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고등어 냄새가 나니까 밥을 먹기 싫었구나."
민희는 깨달았다. 준호에게는 계란프라이를 해줬지만, 주방에서 고등어를 구운 냄새가 식당 전체에 퍼져 있었다. 비린내에 민감한 준호에게는 그 냄새만으로도 식욕을 잃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죄송해요, 준호 씨. 제가 생각을 못 했네요."
준호가 민희를 바라봤다.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다. 그냥... 서운한 표정이었다.
"그럼 다른 곳에서 드실래요?"
정희 씨가 제안하자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로 자리를 옮겨서 다시 식사를 차렸다. 된장찌개와 계란프라이, 그리고 밥. 고등어 냄새가 없는 공간에서는 준호도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다.
민희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의 배려 부족으로 준호가 불편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했다.
"처음엔 다들 그래요." 정희 씨가 위로했다. "저도 몇 년 동안은 준호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관찰이요. 준호는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몸짓이나 표정으로 많은 것을 알려줘요."
점심 준비를 하면서 민희는 더 신중해졌다. 오늘 메뉴는 닭볶음탕이었다. 그런데 문득 걱정이 됐다. 혹시 이 냄새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할까?
"시설장님, 닭볶음탕 냄새는 괜찮을까요?"
"준호는 닭 냄새는 괜찮아해요.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에요."
다행이었다. 하지만 민희는 요리하면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12명 각각의 취향과 특성을 모두 고려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다.
이때 민수가 나타났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는데 얼굴이 조금 창백해 보였다.
"민수야, 괜찮아?"
"네, 이제 좀 나아졌어요." 민수가 힘없이 웃었다.
"그럼 죽 해드릴까요?"
민희의 제안에 민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 닭볶음탕 좋아해요."
하지만 평소의 활기찬 모습은 아니었다. 식사 시간에도 민수는 평소보다 적게 먹었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민희가 물었다.
"억지로 먹이지 않아요. 대신 소화가 잘 되는 것들로 간단하게 해 드리죠."
그날 저녁, 민희는 준호를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썼다. 냄새가 강하지 않은 메뉴로 바꿨다. 두부조림과 계란찜, 그리고 맑은 국.
준호가 식당에 들어와서 오늘의 메뉴를 봤다. 그리고 민희를 바라보더니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마워요, 준호 씨."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식사 후 정리를 하면서 정희 씨가 말했다.
"준호가 고마워해요."
"어떻게 아세요?"
"표정이 달라요. 그리고 평소보다 많이 드셨잖아요."
민희는 뿌듯했다.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준호가 자신의 배려를 알아줬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일 아침엔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준호가 좋아하는 계란프라이 어때요? 그리고 냄새 안 나는 국으로요."
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메뉴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각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집으로 가는 길에 민희는 생각했다. 준호의 거부하는 숟가락을 통해 배운 것은 단순히 냄새에 대한 민감함이 아니었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 그리고 작은 배려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였다.
그날 밤 일기에 썼다.
'셋째 날의 깨달음: 거부하는 숟가락에도 이유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때로는 말하지 않는 감사가 더 큰 울림을 준다.'
내일은 준호가 좋아하는 메뉴로 시작해 보자. 민희는 처음으로 한 사람을 위한 메뉴를 생각하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