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작은 변화
넷째 주 목요일. 민희가 출근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동준이었다.
동준이가 식당에서 민수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 동준이가 민수 옆에?"
정희 씨가 웃으며 말했다.
"네, 요즘 동준이가 살짝 달라졌어요."
"달라졌다고요?"
"계속 자리를 옮기더니 이제는 민수 옆자리를 고집해요."
민희는 놀랐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동준이는 혼자 조용히 먹는 것을 선호했는데.
"동준아, 잘 잤어?"
동준이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동준이, 요즘 기분이 좋은 거 같아."
민희는 아침을 준비하면서 자주 동준이를 바라봤다. 어제와 달라진 점이 있을까?
동준이가 밥을 집어 들었다. 평소처럼 냄새를 맡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새 밥을 준비해 두니 이제는 냄새 때문에 거부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게 있었다. 동준이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리고 식당에서 민수의 목소리를 들으면 가끔 미소를 지었다.
"민희 선생님, 이거 봐요."
유미가 민희를 불렀다. 손에는 동준이의 생활 기록지가 들려 있었다.
"이게 뭐예요?"
"거주인 분들의 일일 활동 기록인데, 요즘 동준이 항목을 보세요."
민희가 기록지를 읽었다.
동준이 - 월요일: 밥을 먹음. 시설 거실에서 식사.
동준이 - 화요일: 밥을 많이 먹음. 식당에서 다른 거주인과 함께 식사. 민수 옆에 앉음.
동준이 - 수요일: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잘 먹음. 민수와 웃음.
동준이 - 목요일: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남. 밝은 표정으로 식당 입장.
"와, 정말 달라졌네요."
"네, 처음 3주 동안은 이렇게 자세한 기록이 없었어요. 그냥 '밥 거부', '반응 없음' 이런 식이었는데."
유미의 눈가가 촉촉했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만약 선생님이 밥 냄새를 못 알아차렸으면..."
"동준이가 신호를 보냈을 뿐이에요."
"그 신호를 읽은 게 대단한 거예요."
점심 준비를 하면서 정희 씨가 말했다.
"요즘 거주인 분들이 다들 달라졌어요."
"어떻게요?"
"음식을 더 맛있게 먹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그냥 먹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기대하면서 기다리더라고요."
민희는 생각에 잠겼다. 아, 맞다. 지난 3주 동안 거주인들을 관찰하면서 각자의 취향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요리했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나?
"선생님이 각자를 다르게 챙기니까 그런 거 같아요."
"그런가요?"
"네, 준호는 냄새 없는 메뉴, 영미는 당뇨 맞춤, 민수는 엄마 김치 맛... 이렇게."
정희 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가장 큰 변화는 동준이인 것 같아요. 그 아이가 인생이 바뀐 것처럼 달라졌거든요."
오후에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수정이가 민희에게 다가왔다. 수정은 평소에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선생님..."
"수정 씨, 무슨 할 말 있어요?"
"오늘 메뉴... 뭐예요?"
수정이가 물었다. 처음 보는 일이었다. 수정은 늘 정해진 메뉴를 조용히 먹는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된장국하고 생선구이, 그리고 나물이예요."
수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저... 생선... 좋아해요."
"그래요? 생선을 좋아하시는군요."
수정이가 작게 미소 지었다.
유미가 옆에서 놀라고 있었다.
"수정 씨가 요청을 한 건 처음이에요!"
"요청을?"
"네, 수정 씨는 늘 정해진 대로만 먹었어요. 메뉴를 묻는 일도, 원하는 것을 말하는 일도 없었고."
민희는 수정을 다시 바라봤다. 규칙적이고, 변화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수정. 하지만 이제 보니 그녀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누군가 관심을 가져줄 때까지는 표현하지 않았을 뿐.
"수정 씨, 앞으로 맘에 드는 음식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자주 해드릴게요."
수정이가 환하게 웃었다.
그날 저녁 식사 후, 유미가 기록지를 다시 가지고 왔다.
"선생님, 봤어요?"
"뭘요?"
"오늘 기록들."
수정이 - 목요일: 처음으로 식사 전에 메뉴를 요청. 밝은 표정으로 생선을 맛있게 섭취. 식사 후 '고마워요'라고 표현.
혜진이 - 목요일: 평소보다 더 밝은 표정. 계란찜을 먹으면서 웃음. "선생님, 진짜 맛있어요!"라고 반복함.
민수 - 목요일: 동준이와 함께 식사하며 더 많이 웃음. 식사 후 자발적으로 설거지 도움.
영미 - 목요일: 당뇨 관련 간식을 받으면서 눈물을 흘림. "너무 고마워요"라고 작게 말함.
준호 - 목요일: 냄새 없는 메뉴를 먹으면서 평소보다 빠르게 진행. 식사 후 미소.
"와, 이게 정말 한 달 전 같은 사람들이 맞나요?"
민희는 말이 없었다. 단지 각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요리했을 뿐인데.
"선생님, 모를 수도 있지만 선생님의 요리 하나하나가 거주인 분들한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아요?"
"유미님...?"
"그동안 거주인 분들이 받아왔던 메시지는 '획일적인 서비스'였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각자를 다르게 봐줬어요. 인정해 줬어요. 그게 이 변화를 만든 거예요."
민희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저는 그냥... 각자를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정확히 그거예요. 알고 싶다는 마음이. 그게 모든 변화의 시작이에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민희는 많은 생각을 했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이렇게 큰 변화를 만든 건가?
동준이가 식당에 나오기 시작하고, 수정이가 말을 걸고, 영미가 눈물을 흘리고, 민수가 더 밝아지고, 준호가 미소 지었다.
모든 게 한 번에 일어난 게 아니라, 하루하루 작은 변화들의 누적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딸들에게 말했다.
"엄마 일 얘기해 줄까?"
"응, 해봐."
민희는 지난 한 달을 이야기했다. 첫날의 당황스러움부터, 동준이의 변화까지.
"엄마, 정말 대단해."
지은이가 말했다.
"왜?"
"처음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그런데도 사람들을 이렇게 변화시켰어."
민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냥 각자를 알려고 했을 뿐이야. 변화는 그들이 만든 거야. 나는 그걸 도와준 것뿐."
그날 밤 일기에 썼다.
'여덟 번째 깨달음: 작은 변화는 때로 가장 큰 변화를 만든다. 동준이가 밥을 한 숟가락 더 먹고, 수정이가 한 마디 더 말하고, 영미가 한 번 더 웃고, 준호가 한 번 더 미소 지었다. 그 모든 작은 것들이 모여 이 시설 전체를 밝게 만들었다. 음식은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것이구나.'
민희는 감사한 마음으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