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메뉴

9장. 미소 짓는 이유

by 윤슬

넷째 주를 넘어 다섯째 주 월요일. 민희는 이제 이곳의 리듬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새벽 5시 30분 출근, 거주인들 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요리, 그리고 식사 시간의 조용한 행복.

아침을 준비하면서 민희는 거실 쪽을 자주 바라봤다. 각 거주인들이 나타나는 순서와 그들의 표정이 이제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정확히 7시. 수정이가 나타났다. 요즘 수정이는 식당에 들어오면서 항상 민희를 본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7시 15분. 혜진이가 나타났다. "오늘은 뭐 해주실 거예요?"라는 질문과 함께. 그 질문 뒤에 따라오는 환하게 웃는 얼굴.

7시 20분. 영미가 조용히 나타났다. 이제는 말없이도 표현했다. 눈빛으로, 표정으로.

7시 30분. 동준이가 민수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이전처럼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그리고 7시 45분. 준호가 나타났다. 준호의 얼굴에는 요즘 자주 미소가 떠있다.

"오늘 준호 씨는 왜 자주 웃으세요?"

민희가 물었다. 준호는 처음에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자주 미소를 짓는다.

정희 씨가 말했다.

"준호는 이제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존중받고 있다고요?"

"네, 자신의 특성을 인정받는 거죠. 냄새에 민감하다는 것도 인정해 주고, 그에 맞춰 음식을 준비해 주고."

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걸 알면 미소를 짓는 거 같아요."

"그렇지 않을까요?"

아침식사 준비가 끝났다. 민희가 준비한 오늘의 메뉴는 미역국, 계란프라이, 그리고 시금치나물이었다.

모두 각자에게 맞춘 메뉴였다.

준호의 미역국은 냄새가 강하지 않도록 깔끔하게, 계란프라이는 그가 좋아하는 정도의 익힘으로.

영미의 나물은 설탕 대신 올리고당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민수의 밥은 새로 지은 따뜻한 밥이었다. 냄새가 신선한 밥.

수정의 미역국은 너무 진하지 않게 끓여졌다.

동준이는 민수와 함께, 혜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섞어서.

거주인들이 하나둘씩 앉기 시작했다.

"오늘도 맛있겠네요!"

혜진이 환호했다. 혜진은 이제 매일 이 말을 반복한다. 그리고 매일 그 말은 진심으로 들린다.

민수가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먹었다.

"오늘도 우리 엄마 김치 맛인가?"

"응, 오늘도 맛있게 했어."

민수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동준이에게 물었다.

"동준아, 맛있어?"

동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맛... 있어요."

모두가 멈췄다. 동준이가 말한 것이었다.

"동준아, 뭐라고 했어?" 민수가 물었다.

"맛... 좋아요."

동준이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더 또렷하게.

유미가 얼굴을 들었다. 눈가가 촉촉했다.

"동준아, 다시 한번 말해 줄래?"

"맛... 좋아요... 선생님..."

동준이가 민희를 바라봤다. 그리고 작게 미소 지었다.

식사 후, 유미가 민희에게 달려왔다.

"선생님, 봤어요? 동준이가 말했어요!"

"네, 정말 놀랐어요."

"3개월 동안 말을 안 하던 아이가... 처음 말을 한 게 '맛있어요'예요."

유미의 눈물이 떨어졌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동준이가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누군가 그 신호를 받아줄 때까지는 표현하지 않았을 뿐."

점심 준비 시간. 정희 씨가 민희에게 말했다.

"선생님, 동준이 엄마가 와 계신대요. 오늘은 특별한 날 같아요."

"엄마가 오세요?"

"네, 동준이 생일이래요."

민희는 순간 당황했다. 동준이 생일인데 자신은 몰랐다.

"생일이셨군요. 그럼 특별한 음식을..."

"이미 알고 있어요. 당신이 만든 음식이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민희는 점심 메뉴를 다시 생각했다. 오늘 예정된 메뉴는 돼지국밥과 계란말이였다. 평범한 메뉴였다.

"특별한 메뉴를 만들어 드릴까요?"

"아니에요. 그냥 평소대로 해주세요. 동준이가 가장 좋아하는 거 말이에요."

정희 씨가 말했다. 이해가 됐다. 동준이에게는 특별한 음식이 아닌, 자신을 위해 만든 음식이 가장 특별한 것이었다.

점심시간. 동준이 어머니가 도착했다. 50대로 보이는 여성으로, 동준이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우리 동준이, 생일 축하해."

동준이가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꼭 안겼다.

"엄마..."

그것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했다는 메시지.

동준이 어머니가 식당 테이블에 앉았다. 동준이는 어머니 옆에 앉았다.

민희가 준비한 음식이 나왔다. 평소대로의 동준이 맞춤 메뉴.

"이거... 동준이가 좋아하는 거네요?"

동준이 어머니가 말했다.

"네, 동준이 특별 메뉴예요."

"우와, 정말 맛있게 생겼다. 동준아, 먹어봐."

동준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바라봤다.

"맛... 좋아요... 엄마..."

동준이의 말에 어머니가 또 눈물을 흘렸다.

"우리 동준이, 뭐라고 했어?"

"여기 선생님... 맛있게... 해줘요..."

동준이가 민희를 가리켰다.

동준이 어머니가 민희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우리 동준이가 이렇게 말을 한 건 처음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밝아진 것도 처음이고요."

"동준이가 변한 거예요. 저는 그냥 밥을 맛있게 해 주고, 그 신호를 읽어준 것뿐이에요."

"아니에요. 선생님이 우리 동준이를 봐줬어요. 진심으로 말이에요."

동준이 어머니는 민희의 손을 꼭 잡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순간, 민희는 깨달았다. 자신이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지. 왜 이 일이 이렇게 보람 있는지.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만들고,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저녁에 거주인들을 위한 작은 생일 파티가 있었다. 민희가 만든 간단한 생일케이크와 함께.

"동준아, 생일 축하해!"

모두가 박수를 쳤다. 동준이의 얼굴은 밝게 빛났다. 진짜 미소였다.

그 미소는 행복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속해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행복.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민희는 생각했다.

동준이가 왜 미소를 짓는지 이제 알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자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미소는 이해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날 밤 일기에 썼다.

'아홉째 날의 깨달음: 미소 짓는 이유는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 때다. 동준이가 밥을 먹고, 말을 하고, 미소 지은 것은 모두 누군가가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신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음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다.'

민희는 행복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이곳에서의 한 달은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변화는 거주인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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