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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렇게 보냈다

그리운 건 언제나 멀리있다

by 규린종희

지독한 시취였다. 간이 병든 시신은 복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득 찬 복수에 팽창한 가스는 사람의 배가 아니었다. 늦은 밤 거처에서 내려온 그 사람. 굳이 노모를 밤마실 보내고는 객혈과 하혈로 생사경계를 넘어버렸다


한순간 망자가 된 그는 K장남이자 장손이다. 칠 남매의 맏이로,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1948년 칠월 태어났다. 천수답으로 살아가는 장손으로 오지 않았다면 그의 생은 어땠을까. 그때는 몰랐다. 돌이켜보면 그는 절절하게 외로운 거인이었다.

아버지는 노동자로 건너간 일본에서 쫌 괜찮은 유학생을 친구로 만났는데 우리들의 외삼촌이다. 식민지 청년 아버지와 외삼촌의 접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경북이라는 공통분모 말고는... 대구고보를 나온 유학생과 한학 했던 노동자... 결이 다른 길에서 외삼촌은 기꺼이 여동생을 소개했다. 30년대 두 사람의 연애담은 이모를 통해 들었다. 현해탄을 오가는 연서들... 일본에서 보내온 노란 양산을 들고 나들이하는 유일한 처녀였다고...

외삼촌은 그곳에서 반제국운동을 했다. 제국의 폭력을 똑똑히 보았을 테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도 젖어 있었겠지. 반제국운동은 청년의 가슴을 거칠게 풀무질했겠지. 해방정국으로 돌아온 외삼촌은 46년 대구 반미폭동에 가담한다. 혁명은 실패였다. 쫓기던 그는 집으로 숨어들었다. 낮에는 아궁이 속에 짐승처럼 엎드려있고 밤이면 출몰하여 전단을 뿌렸다. 막 태어난 첫아들과 유복자를 뱃속에 둔 어느 날 집안의. 먼 친척뻘 되는 놈이 들이닥쳤다. 할매는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우얀일아고
-다 알고 왔어요. 작파하고 부서캐(부엌에) 불이나 넣어소 빨리...
-와.. 백주 대낮에 ᆢ불은 만다꼬 넣어라카노....
-할매요. 퍼뜩 불 넣어요ᆢ안 그러면 이 사람들이 불 땔낍니다
-안 된다 뭐라카노 와이라노

까딱하다간 산 자식이 숨죽인 아궁이에 불을 넣어야 할 기막힌 순간... 결국 외삼촌은 아궁이에서 스스로 나왔다. 어쩌지 못하고 벌벌 떠는 외할매를 뒤에 두고 재투성이로 그렇게 끌려갔다. 부산 거제동 수용소에 갇힌 그는 세 번의 면회 동안 끝내 전향을 거부했다. 남은 자들의 생에 덮칠 폭력은 생각지 못했겠지. 서른 살 그가 북으로 간 후 우리는 연좌제에 시달렸다. 붉은 딱지 속에 웅크려 세상눈치만 보며 살아야 했다. 연좌제가 폐지된 후에도 오랫동안...

외가의 내력을 알게 된 건 오래 뒤의 일이다. 신원조회에 걸려 번듯한 직장을 얻지 못했던 오빠. 오빠들... 결국 장남인 큰오빠는 밀수를 했다. 자신으로 인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동생 말고도 줄줄이 딸려 나오는 구근류 같은 동생들이 다섯이나 더 있었다. 허물어진 담장 세우듯 집안을 건사했다. 서울에서 시작한 밀수라는 무역업은 성공적이었다고 들었다. 논을 사고 밭을 사고 산도 샀으니..

오빠가 오면 집안에 냄새가 달랐다... 뽀마드로 넘긴 머리카락 냄새도 좋았고 살캉살캉 오빠의 살냄새도 좋았다. 커프스단추를 끼운 푸른 셔츠 걷은 소매도 좋았고 번쩍 안아 목마를 태워주던 오빠의 어깨도 좋았다. 다 좋았다. 입꼬리에 밀려 올라간 관자놀이엔 빛이 났고 하얀 손가락은 박화분 같았다.

모든 게 좋게 흘렀다 가세가 번듯해지고 너른 들에 물걱정 없는 논도 수십 마지기를 샀으니... 추곡수매를 끝내고 겨울쯤이야 거뜬히 나고도 남았다. 그런데.. 어라! 하필 군대 소집 영장이 나오네. 돈 벌어 집안 일으키는 장남이 군에 가면... 아! 지극한 차남이 아버지 엄마의 걱정을 읽었나 보다. 기꺼이 형님이름으로 군입대를 자청한다. 3년 6개월 입영하고 제대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또 한 번 입대했다. 직업군인도 아니 그가 이십 대 청춘을 군에 바친 위대한 K차남이다.

호사다마! 잘 나가던 장남이 도망치듯 낙향했다. 잘 돼도 너무 잘 되었나 보다. 동업자의 배신은 한순간 사지로 내몰았다. 호적에 빨간 줄 그일 것인가.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으로 갈 것인가. 지금의 청담동 일대 금싸라기 땅들과 그 밖의 지분들을 내려놓고 장남은 기꺼이 두 번째를 선택했다. 외삼촌의 빨간 줄도 부족해 맏이로서 동생들의 인생에 빨간 줄을 그을 수는 없으니까

얼마간의 돈으로 고향에서 시작한 일들이 판판 깨졌다. 시대를 앞서 갸간 거인은 아주 천천히 몰락했다. 그것은 고통이자 공포였다... 소값파동. 유류파동에 이어 덤프트럭 기사의 인사사고.. 집안사람들의 배신... 계약재배의 실패... 유기농재배는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생의 무게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 부모에 대한 죄스러움이 결국 그를 무너지게 했다.

3일장을 지내는 동안 엄마는 장남의 신발을 안고 밤낮을 울었다. 신발은 살아 숨 쉬는 자식의 존재였으니...
-이놈아 네가 그래 갈라고 나를 놀러 보냈더 나.. 에미한테 흉한 꼴. 안 보일라고 그랬더냐. 이놈아 네가 있어야 내가 있지 네가 없는데 에미가 다 뭐란 말이고...

엄마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그의 아내가 안쓰러워 울고. 그가 남긴 삼 남매의 막막함에 울었다. 3일장 내내 마른바람은 어찌 그리 불어대는지... 바람에 뒹구는 마른 잎이 곡소리로 보일 지경이었다
이승에서 마지막 밤이 지나자 새벽부터 마당엔 상여를 꾸리기 시작했다. 대소가 청장년들이 모종골 유택으로 운구할 채비를 서둘렀다. 이런 일이 있나... 어쩌자고 관이 바닥에 붙어 꿈쩍을 않는다 -이놈아 가거라.. 이래 안 떨어질 거면 더 모질게나 살지... 가거라 가거라.... 비통한 에미의 애절양이 이어지고 어린 상주들이 울 힘조차 없어지자 관이 버쩍 들리는데... 이를 어째! 관에 고였던 살 녹은 검은 물이 쏟아져 나온다.

경악...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화면처럼 아주아주 짧은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모든 감각이 초강력 탈수기에 빨려 들어간 듯 꼼짝 못 한 그 순간의 정적을 깬 것은 어미였다. 엄마는 시취와 함께 녹아내린 자식을 온몸으로 거두고 있었다. 검은 물.... 그건 연좌제가 남긴 지독한 생의 찌꺼기였다.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무게를 지고 살았던 K장남을.. 우리는 그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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