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우체부

그리운 건 언제나 멀리있다

by 규린종희

그때는 종이 한 장도 음복했다. 휴지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오래된 잡지나 책이라도 있으면 변소에 걸어 두고 사용했다. 언니들이 학교에 제출하지 않은 책으로 변소에 쪼그려 조기 학습을 했으니 생각해 보면 선행학습이 그곳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선데이 서울도 변소에서 읽었고...

우리 집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신문 들어오는 집이다. 신문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데 시월 묘사 때는 음식을 봉계하여 음복을 돌렸고 명절엔 방바닥에 깔아 과줄을 말렸다. 사랑방 할배와 그의 다섯 동생은 작게 잘라 잎담배를 말아 폈으며, 손바닥만 하게 자른 건 또 변소용으로 썼다.

늙은 우편배달부 이름은 '피종수'다. 키 160센티의 면내 유일한 우체부였다. 피종수는 얼굴이 까무잡잡했고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입꼬리엔 허연 침이 고약처럼 고여있지만 목소리는 언제나 맑았다. 우편가방을 어깨에 메거나 자전거에 싣고 다녔는데 웃을 때면 두어 개 남은 앞니가 짓다만 다릿발처럼 엉성했다

피종수의 걸음걸이는 구불구불 논두렁 걷듯 비틀거렸다. 늘 술에 취해 다녔기 때문이다. 이 마을 저 마을 들리는 곳마다 한잔 한잔 받아먹었을 테니 술에 어디 장사 있나. 문제는 술에 취하면 배달이고 뭐고 머리 닿는 곳이 그의 집이고 방이 되었고 으레. 그다음 배달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우편가방은 홀쭉한 날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를 닦달했거나 멱살잡이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간절하게 기다리는 답장이 있는 언니 오빠들의 사정은 달랐다. 동네 어귀에서 피종수를 기다리다 못해 길에서 만나면 기어이 자기 우편물을 찾아가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편지를 찾아주고 대신 뽀빠이나 별사탕을 얻어먹었으니 피종수를 기다리는 이유는 저마다 달랐나 보다.

날마다 들어와야 할 우리 집 신문은 그의 상황에 따라 주간이 되기도 하고 3일 간이 되기도 했다. 노끈에 묶어 들어온 3일 치 혹은 일주일치 신문은 더 이상 신문이 아니었다. 피종수는 턱까지 술에 젖어 해거름 둥지들 듯 찾아왔다. 자전거는 아무렇게나 세우고 아버지가 거처하는 마루에 털썩 앉는다. 아버지는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가 오면 나를 불러 술상 심부름을 시켰으니...

엄마는 우체부가 왔다는 내 말에 고운 낯빛을 하지는 않았다. 엄마에게 피종수는 탐탁지 않는 외부인이었고 개념 없는 사람쯤으로 치부되었을 테니... 그를 방으로 들이는 아버지도 동시에 힐난의 대상이 되었겠지. 그러니 가운데서 심부름하는 나만 애면글면했다.

그 밤 피종수는 밤늦도록 이 마을 저 마을 이야기를 풀어놨다. 어쩌면 아버지는 우체부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세상 이야기를 기다렸는 지도 모른다. 그런 날엔 나도 아버지 무릎을 베개 삼아 까무룩 잠들다 깨고 잠들다 깨기를 몇 번이나 했다. 돌이켜보면 늙은 우체부 피종수... 어쩌면 그는 최고의 스토리텔러였다.

이젠 낡은 책장이 덜컹이는 변소는 해체되고 피종수도 죽었다. 오랜 시간의 마멸과 풍화 속에 말간 기억만 명징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