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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건 언제나 멀리있다

by 규린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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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입니다
2주 만에 다시 찾은 안과.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담담하게 있는 내게 그림을 그려 설명한다. B대학병원 ㅇㅇㅇ 교수에 진료 의뢰서 넣겠다고...

2주 전, 진료를 끝내고 그가 말했다. 수술 여부는 대학병원 교수들과 의논해 보겠다고... 그땐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러면서 2주 뒤 다시 보자 했다. 그동안 처방전의 지시대로 꼬박꼬박 따랐다. 단순 현상인 줄 알았다.

-악성이라면... 그다음의 일들이란 상상하는 그런 건가요
-빠른 시일 대학병원 예약하세요. ㅇㅇㅇ교수입니다.

이런 일을 피해 가지는 못할 줄 예견했지만 그래도 당혹스럽긴 하다. 악성이라니... 진행을 봐야 한다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진료의뢰서를 챙겨 나오면서부터는 없던 동통이 느껴진다. 플러시보 효과라고 해야 하나.

자식들에게 가족 톡을 열어 상황을 알렸다. 우린 말을 못 했다. 뒤통수 맞은 사람들처럼 셋이 톡을 열고도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라고 부르기만 했고 나는 응... 대답만 랜선을 타고 왔다 갔다 했다. 한동안...

신생물이란 생명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이다. 그것이 cancer라는 말보다 부드럽긴 하지만 neoplasm이란 의학용어는 내 생의 neolanguage로 온 셈이다. 머리를 비우려면 우선 걸어야겠다. 바닷물에 씻김굿 하듯 생각들을 씻어내야지... 수육에 밥을 든든하게 먹고 걷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 체력을 키워야 견디어 내겠지. 진료 예약 관계로 미리 메시지를 받은 J 원장님 전화다.

-울고 있나 해서...
-울긴요... 당혹스럽긴 한데 ᆢ체력과 근력을 키우려고 고기 먹었어요... 지금은 물 위를 걷고 있어요.

L 교수 통해서 진료를 해 줄 ㅇㅇㅇ 교수 핫라인 연결되었고 이제 씩씩하게 시간을 견디면 된다. 그동안 보험을 설계해 준 이 여사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만약의 경우 비급여 급여 부분의 지급체계도 정리해 두었다.

상반기 진행할 강의를 체크했다. 다행이다. 어쩌다 올해 강의가 비어있어 나를 살펴볼 시간이 생겼다. 만약 전이가 되었을 경우 생존율을 검색해 봤다. 그러나 이내 닫았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 마침 딸 친구 리하가 안과의사로 있어 ᆢ 이후의 생체 리듬은 리하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순식간에 닥쳐온 일임에도 바퀴와 바큇살처럼 우선은 자연스럽다.

이제 알려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만두기로 한다. 개인 사진들을 제외하고 이젠 기억으로만 남겨야 하는 시간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우기로 한다. 8월엔 기록물 정리도 해두어야지... 어떤 경우라도 불필요한 정보를 남겨두고 싶지는 않으니까... 베토벤은 되지 못해도ᆢ호머의 심미안을 가지게 되려나...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보는 모든 순간을 사랑해야지


바다를 걷다 모래밭에 앉았다. 예약 가능일자가 2026년 1월이다. 우선 첫 시간 예약을 하고 관련 상황을 J 원장님한테 보냈다. 다시 물 위를 걸었다. 빌딩 너머로 가는 석양이 오늘따라 귀하게 보인다. 아. 나는 날마다 끝자락을 딛고 새길을 걷는구나...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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