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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시...통...통...통

그리운 건 언제나 멀리있다

by 규린종희


늙음의 과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린 것이 시각이었다. 안경을 두 개씩 겹쳐 끼고도 턱을 올려야 겨우 끄트머리가 보였다. 세상이 가려지고 흐려지는 현상은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퇴적층으로 쌓인 지방을 걷어냈다. 테이프를 붙여 막 병원을 나서는 순간 뻥 뚫린 수평선을 봤다. 수평선이 확장된 세계란 맨살처럼 반짝였다. 물기 남은 머리카락에 반사된 햇살처럼 신선했다. 확장된 세계는 첫울음... 첫 옹알이... 첫걸음을 볼 때처럼 신기했으니...

그 쾌에 빠져 한동안 변의를 잊었다. 묵직한 속을 인지한 건 4일 만의 일이다. 오래된 변의란, 의식작용에만 그칠 뿐 결장을 막은 덩이들은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나와야 할 것들이 나오지 못할 때의 난감함... 통쾌하지 못한 몸이란 올무에 걸린 짐승과 다름없다

통시通時 의 위대함을 불통不通에서 알아차린다. 돌덩이들의 좌표를 파악, 굴착하여 쪼개고 짜내는... 통변의 고통... 마침내 마지막 기표 하나가 밖으로 나올 때의 쾌감이란 감히 출산의 통쾌痛快에 견주어도 될 만했다. 통시란 동시성을 띤다. 그러니 화장실, 변소라는 말보다 통시는 심오하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혼재하는 가장 낮은말이다.

어린 날 통시는 푸세식이었다. 뒤켠으로 돌아가는 한적한 곳에 통시가 있었다. 옷을 내리고 쪼그려 앉아 변을 볼라치면 무서운 이야기는 왜 그리 생각나는지... 빨간 종이 파란 종이부터 달걀귀신, 총각귀신까지... 부스럭 소리만 나면 움찔움찔 긴장했다. 돌이켜보면 내적 자극이 외적 표출로 이어지는 동안의 스트레스가 어쩜 나를 성장케 했는지도 모른다.

화학비료가 나오기 전엔 인분을 거름으로 썼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에 뿌린 인분은 사방에 지독한 냄새로 날아다녔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인분은 겨울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하는 경험이었다. 엄동에 얼고 녹기를 거듭하는 동안 똥의 독기도 빠진다는 걸 보여준 그들이 있었다. 푸세식이 수세식으로 바뀌고 통시가 레스트 룸이 되는 동안 그들은 죽어 나의 언어가 되었다. 생의 찌꺼기들이 모인 통시는 괜히 통시가 아니다. 通詩...通時...通視...通...通...通... 그러니 통시란 꿰뚫어 보는 세계다.

무릇 늙음이란 몸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시간... 존재방식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늙는다는 것은 스스로 부드러워지는 일이다. 나는 지금 늙음에 배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