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건 언제나 멀리있다
북위 35˚ 48` 로 가는 버스를 탄다. 오전 10시. 그곳 도서관에서 <그림과 여행으로 만나는 인문학> 강의가 있다. 비 오는 날의 원행... 비가 가둔 언어는 꼿꼿하게 선 채 길을 연다. 수직의 세계를 수평으로 가르며 나는 간다. 기둥만 남은 신전 붉은 열주처럼 비의 행렬이 장엄하다.
7시에 출발한 고속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완행버스가 되었다. 들과 산으로 난 신작로를 달려 의령터미널에 정차했다. 빗줄기는 굵고 빗소리는 거칠다. 버스에서 잠시 내렸다. 처음 닿는 곳은 어디든 신시다. 그러니 나는 날마다 신시를 걷는다.
그해 겨울 치앙마이로 가는 가방을 챙길 때 먼 곳의 그가 말했다.
-나는 어느 방향을 보고 있어야 하나요
-북위 18. 090. 연필이 걸어가는 길 위에 있을 거예요
피아졸라 탱고를 남카라 바이올린으로 들으며 침대 헤드에 기대어 대답할 때... 겨울해가 시폰 커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해 그림자를 보면서 듣는 그날의 음악은 황홀하게 쓸쓸했다. 현을 지나가는 활이 눈밭에 파고드는 산짐승의 하울링으로 보였으니까...
-제 목이 길어지기 전에 오셔야 해요
-이 문장을 나침반처럼 볼게요
그의 말에 묘한 울림으로 증폭되었다. 제목이 길어지기 전에... 제 목이 길어지기 전에... 그의 말은 북위 18.090에 머무는 동안 위로가 되어 주었다. 릴리와디 진한 향기처럼...
길을 나설 땐 같이 밥 먹을 일행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혼자여서 편할 때도 있지만 밥 먹을 때만큼은 혼자여서 불편하다. 그러나 여행지의 사정은 달라진다. 의외로 홀로 여행자가 많다. 구도자의 길처럼 걷는 홀로 여행자들을 만날 땐 나를 들여다보는 힘을 얻는다
떠나오기 전 그대와 밥 먹으면서 위로받은 순간이 많았다. 밥을 먹으며 다정함이라는 말속에 같이 있었다. 그래서 숱한 시간이 고마웠다.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건 위로였다. 배가 차면 마음도 찼으니까... 어쩌면 밥을 먹으며 나는 나를 위로했는지도 모른다.
길 위에서... 생각을 일으키는 기억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비는 우선 멈추었고 버스는 쌍백면사무소를 지나는 중이다. 정오엔 다시 신시로 가는 버스를 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