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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들의 합창

그리운 건 언제나 멀리있다

by 규린종희

포도 익는 계절이다. 정리되지 못한 것과 정리할 것들을 양팔저울에 얹어두고 한 번은 이쪽으로 한 번은 저쪽으로 기울어지고 일어서기를 거듭하는 중이다... 대중가요로 풀어내는 불멸의 인문학은 k들의 호응 속에 성장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를 키운 건 50년대 태어나 60년대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돈 벌러 간 k들의 무한 사랑이었다.

K장녀들은 잘 사는 도시 친척집으로 식모 살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입 하나 덜 요량으로 딸을 남의 집으로 보내는 맘이야 오죽하랴만 그래도 도시에서의 삶이 시골보다는 낫겠지 하는 맘도 있었겠지. 데리고 갈 때는 학교도 보내주고 시집갈 때 한 밑천 챙겨줄 거니 걱정 마라 하고선 정작 사정은 그 반대였다.

말이 식모살이지. 어린 나이에 천지간 의지할 데 없으니 맘 놓고 울지도 못했겠지. 노동착취에 버금갈 정도의 일을 하지만 월급은 언감생심이라... 해 지면 별 보고 울고, 달 뜨면 엄마생각하며 울고... 어쩌다 우는 행색이 들키는 날엔 욕설을 먹어야 했던 처지의 생이 그녀 k장녀들이었다.

시집갈 때 한 밑천 해준다는 말은 어디 가고, 수저 두벌. 오봉 하나, 호마이카 삼단 찬장 덜렁 사준 게 전부더라고...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도시로 간 그녀가 혀를 끌끌 찬다. 중학교만 나왔더라도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죽어라고 살아냈더니 덜컥 병이 왔다고... 칠십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못 배운 것만큼 한이 된 건 없다고...

K차녀들은 말한다. 중학교 졸업하고 도시로 돈 벌러 갔다고... 고무신 공장 본드 냄새 맡아가며 일했다고... 월급날 오기 전부터 오빠 학비며 동생들 공납금 통지서가 먼저 날아오더라고... 우편환으로 바꿔 부치고 나면 다시 한 달을 굶어가며 일했다고... 어느 때는 미싱을 밟다 깜빡 졸아 손가락 위로 바늘이 지나가는 줄도 몰랐다고... 그래도 서면시장 칼국수 한 그릇 먹을 때는 세상 부러운 게 없더라고...

K장남들도 할 말은 많다. 장남 장손이라 공부를 시키지만 집안을 건사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늘 어깨를 눌렀다고... 동생들의 희생을 먹고살아냈기에 그 무게가 평생을 미안함으로 걷게 했다고... 대학을 나오고 번듯한 직장을 얻고 소위 출세를 했다지만 마음빚이 눌려 기 펴고 살지 못했다고... 동생들 뒷배라도 되어주고 싶지만 장가들어 식솔이 생기니 가장의 무게가 또 있어 이래저래 눈칫밥 신세가 되었다고... 돌이켜보니 원했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K차남의 고충이야 새삼 말하여 뭐 하겠냐만... 서면 공구상에 취직하니 그래도 맘 좋은 주인을 만나 일을 배우며 성장했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덕에 어엿한 사장이 되어 배고픔을 대물림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만 다녔어도 사는 길이 달라지지 않았겠냐고... 형님 공부시키고 동생들 돌본다고 내 인생은 없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동생들 입 속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좋았다고... 교복 입고 학교 가는 동생들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고...

나훈아와 남진은 칠십 년대 k들의 위로였다. <님과 함께> 살고 싶은 꿈이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으며. 이뿐이 곱뿐이가 기다리는 <고향역>으로 갈 설렘이 살아내야 할 이유가 되었다. 나를 기다려주는 고향이,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언젠간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오순도순 알콩달콩 살아야겠다는 꿈이 있어 그 지난한 시간을 견디어낸 k, k, k, k들...

K들이 걸어온 길 위에 길을 내며 걷는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보는 것도 아깝다는 k막내다... 오래된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 포시럽게 성장했으나... 내가 걸어온 길도 소설책 몇 권은 쓴다♡^^♡

수국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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