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문재 일기
꿀꽈배기를 깨물었다. 오던 비가 뚝 부러진다. 오도독 부수어 녹여먹는 꿀꽈배기엔 꿀맛이 잔상으로 남았다. 뚝 부러진 비는 비로 죽었다. 죽음 이후의 잔상은 기억으로 남았다. 아버지는 기억으로 남았고 어제의 사랑은 잔상으로 남았다.
브로콜리 꼬실꼬실한 머리를 먹기 좋게 잘랐다. 멸치는 대가리 떼고 똥도 빼고 배를 갈라 볶았다. 내 새끼는 똥 냄새도 달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선생인 아들은 개학을, 대학교 선생인 딸은 개강이라 하더라. 나는 프리랜서라 현 위의 물방울이라 하고선 서울에서 부산에서 한 테이블에 있는 듯 웃었다. 서른넷. 서른다섯. 두 자식은 해야 할 과업이 많고 육십 되는 나는 줄여야 할 과업이 많다.
여름날 찻자리... 추구하는 바가 무어냐고 그가 물어보길래 날마다 가벼워지는 거라고 말했다.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먼지처럼 날아가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불교의 윤회란 사회생물학에서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라고... 유전자의 기억이 있어 한 번도 본적 없는 4대조를 닮았다고 하니... 까마득한 날에 나 닮은 인류도 하나 나타나겠지.
강의 원고를 손보다가 머리카락을 훑어내리는데 손가락 끝에 딱딱한 알갱이 하나가 툭 걸려들었다. 무심하게 지났을 텐데 몸 이곳저곳 수선할 곳이 생겨나는 시절인 통에 거울에 비춰보았다. 열세 살 때 그 자리에 좁쌀보다 작은 뾰루지가 났었다. 콩의 뿌리혹처럼 모발의 뿌리에 뿌리를 박고 생겨난 뾰루지가 내게서 47년을 살았다.
처음엔 기생하다가 공생으로 패러다임을 바꿔 이글루 같은 사마귀가 되었다. 머리를 쳐들면 쥐어 박히기 마련이고 쓸데없이 집이 크면 눈에 띈다. 눈에 띈다는 것은 좋은 것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숙이고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옛집은 낮은 문을 냈으니...
오래전 백제병원 종손자를 만났다. 큰 규모의 병상을 가진 병원을 경영하는 그는 정형외과 전문의였다. 백제병원의 역사는 개인사이자 가족사이고, 조선의 역사이자 건축사 의료 사다. 명지에서 미곡상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 조선인 최초로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어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병원을 짓기 위해 일본에서 벽돌을 가져왔다. 그 깊은 이야기는 차치하고 그 집안에 암묵적으로 내려오는 말이 '1등 하지 마라'는 것이라니... 채록을 하면서 아이러니란 말을 실감했었다.
경우야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자세 낮추라는 맥락은 닿아있을지도... 낮추는 말 중에 지존은 '과인'이다. 나라님이 신하들과의 조강 주강 석강에서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했으니 살펴 경계하여 수신하는 건 하늘아래 예외가 없음이라
키보드를 톡톡 두드리다가 툭 나온 뾰루지가 자꾸 걸려 집 앞 병원으로 갔다. 사마귀네요. 온 김에 레이저 합시다. 간단하니까.... 마취하고 2분이 채 안되어 상황이 끝났다. 살타는 냄새가 머리카락을 빠져나와 코끝에 고인다. 47년 기생도 공생도 끝장을 본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 눈에 띄지 않으면 오래 살고 쓸데없이 몸집 키우면 결국 도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