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토문재 편지

by 규린종희

내가 나를 가둔 것도 사실이다. 한때의 자신감과 배짱이 밀물처럼 빠져가고 있음을 보면서도 어찌할 바 모르겠기도 했다. 혼자 상상하고 결정하고 실행하고 질주했던 30년이다. 그건 한세대가 시작되고 사라지기도 하는 시간의 층위다. 그땐 50대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잘 성장했다.

막상 와보니 다음 그림을 계획하지 않았다. 딴딴한 바닥이 물렁해지는 2년의 시간 동안 크레바스 감춘 설산을 아슬아슬 걸었다. 그건 두렵고 한편 외로운 일이다. 그 복잡 미묘한 아득한 두려움은 온몸에 피 빠져나가듯 서서히 에너지를 고갈시켰다.

그럼에도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은 그때부터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는 앞서 살아온 시간들처럼 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새로운 테마를 찾지 못하고 결국 바닥을 만난 것이다. 나는 나를 변화시키지 못했고, 내 중심을 세우지 못했으며 겨우 환호에 기대는 삼류 광대가 되어있었다

그나마 나를 붙잡은 건 그림이었다. 하얀 세계에 수없이 점을 찍었다. 점이 별이 되어 우주를 종횡하며 날아다녔다. 정통 그림세계를 걸어온 작가들에게는 ' 별 이상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도 2년간의 그림은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을 언덕이 되어주었으며... 무릎 세워 일어날 바닥이 되어 주었다.

다시 시작이다. 60살 이후의 삶이 아니라 10년 뒤, 70살에 나는 어떤 모습 이어야 하는가를 그렸다. 스무살에 50대의 그림을 그렸듯이 ... 그때를 상상하며 오늘을 기운차게 걷는다. 어제 죽은 나를 거두며 산자로서 산자의 길을 연다. 긴말않고 두말없이 잔말 빼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

바람 좋은 마당에 린넨을 깔았다. 조금전 주문한 콜롬비아 워시드 게이샤를 기다리고 있다. 물 뿌린 흙에서 페스트리 빵냄새가 올라왔다. 지열이 흩어지자 마른 것들이 부서지며 공기를 끌어당긴다. 코 끝에 고인 빵냄새가 오래된 일기를 볼 때처럼 담담했다. 커피가 나왔다. 커피의 수증기를 코로 마셨다. 각성, 습기 많은 오후 한 시의 각성이다. 이국의 공항에서 처음 맡는 냄새처럼 콜롬비아 게이샤에서 이국의 낯선 바람냄새가 퍼진다.

벌새가 왔다. 사소한 바람에 꽃이 크게 흔들린다. 벌새는 꽃보다 더 자주 흔들리며 날아다닌다. 벌새에 매달린 꽃은 길게 키를 세운다. 꽃의 문장을 버물린 벌새가 지나간 뒤에 벌새보다 더 작은 나비가 왔다. 잿빛나비가 팔랑팔랑하는 사이 벌새는 우웅 가버렸다. 우웅은 빛의 속도라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이륙한 비행기가 이내 사라지듯 벌새도 사라졌다

풀밭엔 온갖 존재들이 섞이어 연필 깎는 소리로 밀려 나온다. 날개를 비비는 여치가 이명처럼 귓밥에 고여든다. 이명이 되는 순간 여치 소리는 울음이 되었다. 풀벌레소리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바람을 붙잡았다. 목덜미로 내려온 바람이 가슴골로 들어간다. 아! 그래서 가을바람은 가슴에서 일어나는가 보다.

커피를 마신다. 붉은빛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멀리 있어 더 가까운 사람의 온기를 마신다. 식어가는 만큼 깊어지는 커피처럼 먼 곳은 사람은 날마다 그만큼의 깊이로 뿌리내린다. 그만큼의 자리를 잡는 동안 그림자는 길었다 짧아지고... 별이 지고 뜨고 ...바람은 구름을 풀어놓기도 한다.

비다. 우산을 사람들 사이 손으로 하늘을 가린 사람이 뛰어 온다. 뛰는 자는 나비처럼 왔고 걷는 자는 쓰르라미처럼 머물렀다. 하얀꽃 배롱나무가 붉은 수피라는 걸 보고 있다. 붉은꽃 배롱나무 수피가 맑았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금빛나락의 열정... 태곳적 신비의 벌레소리... 밤새 더 달달해진 숨결... 저절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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