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아름다운 것은 그만큼의 거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의 거리에 담긴 출렁거림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것은 섬이 아니라 거기에 닿는 물결입니다.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나 길은 멀어 물결은 제 몸을 흔들어 파도를 일으키지요. 숲이 아름다운 것은 섬으로 서있는 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 끝에 닿은 잎의 출렁거림이 이어져 숲을 이루니 마치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물길처럼 숲은 땅의 바다입니다.
섬이 있어 더 아름다운 바다처럼,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씨앗처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정 없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웃기 시작하면 그 사람에게 사랑이 싹트고 있다는 시그널입니다. 단단한 가슴을 흔드는 미세한 틈으로 바람이, 햇살이, 빗물이 스며들면 씨앗도 부풀어 오릅니다. 마침내 제 속을 감당하지 못한 씨앗은 겉껍질을 깨고 푸른 싹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더없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사랑이란 감정이 생길 때입니다. 모든 것이 부드럽게 보이고,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도 새롭게 다가오니 어찌 웃음이 없을까요. 관자놀이까지 올라간 입꼬리에 훈장 같은 주름도 잇몸을 드러내며 웃습니다.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 힘... 눈뜨는 아침이 환희로 다가오는 것도 사랑이지요. 그러니 어찌 사랑에 늙고 젊음이 있는가요
어느 봄. 육십 년 동안 줄곧 시를 읽었다는 칠십의 소녀가 말했습니다.
“이 나이에 주책 같지만 나도 못 견디게 외로워요. 달달한 사랑을 하고 싶은데... 이런 감정을 원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욕하겠지요?”
10년 전 사별한 그녀에게서 단지 노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감정을 자발적으로 거세한다는 것은 부당함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 사랑 없이 어이 살 수 있나요’라는 노랫말처럼 사랑 없는 삶은 사막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요. 연애하셔요. 어린 날들의 회오리 같은 폭풍은 아니더래도 노년의 폭풍은 천천히 일어나는 폭풍이잖아요. 같이 산보하고 , 같이 차 마시고,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보고 싶은...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보듬고 싶은 것.. 그건 연애할 때만 만날 수 있는 감정이잖아요 ”
“늙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공감해 주니 고마워요. 외로운 만큼 무서운 병도 없답니다. 가끔은 누군가 뒤에서 안아주면 좋겠어요”
인간은 육체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의식적 존재잖아요. 정서의 외로움도 있지만 육체의 외로움 또한 결코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듯 이어가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나의 노년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육체의 경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유연한 의식으로 매 순간 가슴뛰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 순간을 영원으로 걸어가는 일이겠지요.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 생이잖아요. 매 순간을 ‘맨 처음 고백’하듯 걷는다면 생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가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풍부한 사랑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도 노년의 사랑이잖아요.
우리는 매 순간 이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어제의 나와 이별하고, 조금 전의 나와 이별하고... 우리는 날마다 처음을 살아가는 존재... 그러니 사랑에 나이가 장벽은 되지 않겠지요. 날마다 처음 만나는 그에게 하는 고백은 누구나 맨 처음 고백이니까요. 오늘은 또각또각 걸어가듯 폰을 열어, 맨 처음 고백을 보내보면 어떨까요
'살아오면서 이토록 가슴 뛴 적이 없었어요. 날씨가 좋아요 라는 말은 보고 싶다는 말이랍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