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도 강물처럼 흐릅니다. 흐르다 높은 산을 만나면 산을 휘감아 돌아 흐르고, 깊은 웅덩이를 만나면 그 깊이를 채운 후에 또다시 흘러갑니다. 그러다 마침내 바다를 만나게 되면 강이라는 이름을 내려두고 바다가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날마다 삶을 디자인하는 노년의 인생이란 유장한 물의 길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어느 한쪽이 그 길을 다하고, 기억되다가 마침내 기억하는 마지막 한 사람이 사라지면 완전히 소멸하게 되는 것이지요. 떠난 사람은 언제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만 남은 자의 소매 끝은 마를 날이 없습니다. 한 시절 머문 자리 머뭇거림 없이 떠나는 나뭇잎처럼... 잎 진 자리마다 돋는 새눈처럼... 아니라 해도 저절로 그러한 때가옵니다. 그렇지만 빨랫줄과 바지랑대처럼 어깨를 내어주며 걸어온 사람에게 상실은 더욱 큰 외로움으로 들어앉습니다.
외로움을 고독이란 말로 둘둘 감고 살아간다고 십 년 전 상처한 그분이 말했습니다. 오랜 투병 끝에 처지를 달리 한 아내를 지켜내지 못한 미안함으로 한 3년을 버티어 냈다고 했습니다. 또 한 2년은 여러 가지를 배우며 지냈지만 어떤 것도 빈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고요. 느닷없이 들이닥친 외로움이란 벽 속으로 생의 에너지가 모두 빨려 들어간 것 같다고요...
칠십이 되고 보니,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만큼 머뭇거림, 민망함도 더 크게 다가오더라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외로움도 깊으면 병이 된다는 말을 알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세월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부드러워지는 걸... 그래서 아이 같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강물의 얼굴을 본 적 있는가요? 아니면 강물의 뒷모습은요? ”
내 말에, 커피잔을 들다 말고 그가 나를 보았습니다. 입으로 가져가던 커피잔을 도로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강물의 얼굴이라니요... 강물의 뒷모습이라니요... 그런 게 어딨습니까...”
“아니요. 강의 얼굴도 뒷모습도 있어요. 강이 흘러오는 방향을 보면 그것은 강의 얼굴이고. 방향을 돌려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그건 강의 뒷모습이잖아요”
“그런 억지가... ”
“세상의 관점으론 그럴지라도, 선생님의 의식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강은 얼굴도 보고 뒷모습도 볼 수 있어요... 선생님, 자주 가시는 배움 센터에서 결이 통하는 여자분을 만나면, 친구 하자고 해보세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걷고, 같이 차 마시고... ”
“그러다가 감정에 빠지면... ”
“크루저 여행하듯 감정의 바다를 여행하는 거지요. 여행만큼 아찔한 즐거움도 없잖아요. 다만 사랑 그 자체만을 생각하면서요...”
한 사람을 향하여 온전히 뜨거워질 수 있는 시간이 생에 얼마나 될까요. 단순한 삶의 풍경을 넘어 따뜻한 빛으로 다가오는 일상을 만날 때, 사람은 사람에 물들어 마침내 그 사람이 되겠지요. 노년의 사랑이란 화닥화닥 데이는 뜨거움은 약할지라도 그럼에도 생의 희열을 주는 불꽃이잖아요. 외로움이라 쓰고 고독이라 읽지 말아요. 노년은 단어일 뿐입니다.
(그림. 설희 <설레임>. 캔버스에 오일파스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