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강의를 마치면 위미 해변, 그를 처음 만난 카페로 가리라. 지금껏 놓지 못한 그 마음과 생각을 놓아야지. 바다를 향해 전부를 열어둔 카페의 팽나무에 나는 신화적 의미를 부여했었다. 그를 처음 만나던 날, 신화를 꿈꾸는 사람처럼 아니 신화를 열어가는 사람처럼 그 나무에 어떤 주술적 의미를 걸었다. 팽나무는 느닷없이 나의 의미에 갇힌 채 7년을 보내지 않았던가. 이제 나는 그를 보내듯 팽나무에 부여한 의미를 거두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나무에게 자유를 주리라.
욕조에 반쯤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을 후후 불어가며 조금씩 마셨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영원한 파라다이스는 없다. 그런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인간은 성장하지만 끝내 텅 빈 쾌락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은가. 고통의 부재가 쾌락이라고 했던 에피쿠로스처럼 고통의 생산자가 곧 나였으니... 절제되지 못한 삶. 거세하지 못한 생각의 뿌리가 결국 나를 힘들게 했으니.., 나를 위해서 이젠 텅 빈 쾌락으로부터 가벼워져야지. 멀리 보이는 서귀포 항의 새벽은 그림이다. 먼 곳의 풍경은 언제나 그렇다. 삶의 치열성 대신 일차적으로 보이는 풍경에 내 감성을 싣기 때문이다. 섶섬의 검은 실루엣이 잔잔하게 다가온다.
오직 손끝에서만 읽히는 글자, 점자처럼 섬과 섬 사이를 읽는다. 바다와 섬 사이 어떤 온기를 채우며 욕조의 물을 휘저었다. 지난밤의 찌꺼기들을 땀으로 뽑아낸 내 몸 어디쯤에서도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먼 훗날 먼지 앉은 서가에서 눈 맑은 이의 어깨에 내려앉은 햇살 같은 이야기로 남았으면 됐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좋다. 그에게 쌓였던 내 시간들 발치하듯 뿌리를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래야지....
강의를 마치고 팽나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제와 달리 쾌청하다. 너무나 맑아 손가락을 튕기면 챙.. 하고 보이지 않는 현이 울릴 것 같은 날씨다. 정류장에 내려 카페로 가기 위해서 검은 해변을 끼고 천천히 10분을 걸었다. 해마다 1월이면 같이 걸었던 길이다. 귤 밭 사이로 눈 덮인 한라산 영봉이 몽블랑처럼 보였다. 바다 위로 쏟아진 윤슬은 검은 해변으로 달려드는 바다를 하얗게 덮고 있다. 팽나무로 가는 동안 윤슬은 섬 속의 섬 지귀도를 향해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카페에 들어설 때쯤엔 기어이 섬을 삼키기 시작한다. 그와 나도 섬 속의 섬이다. 그와 내가 앉던 카페의 자리가 비어있다. 나는 내가 앉던 자리에 앉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자리에 가방과 외투를 올렸다. 커피 한잔,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뜨거운 물이 담긴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서는 휴대폰에 점자 같은 글자를 찍기 시작했다.
가끔 머리를 들어 지귀도와 팽나무를 번갈아 보았다. 오직 ‘나-세계’만 있는 이 순간 이제 팽나무에 걸어두었던 의미를 풀어주어야 할 시간이다. 눈앞에 있는 풍경에 몰입하는 만큼 길 위의 세계에 몰입해야 하리라. 무슨 의식처럼 진지하게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다.
오래전 그를 처음 보던 그날 제주의 기억이 비늘처럼 일어선다. 한라산이 보이는 객실 침대에 몸을 묻은 채 창으로 돌아누웠다. 멀리 눈 덮인 산정에 아침 해가 막 당도하고 있었다. 대정의 찬바람도 거친 호흡을 내려놓아 젖힌 커튼 사이로 곧게 선 야자수 바람에 흔들리며 어둠을 깨우는 시간, 시트를 당겨 몸을 밀어 넣듯 시의 행간을 꼬물거렸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하는 여행을 원했다. 그즈음 나는 정윤천의 시 <십만 년의 사랑>에 빠져있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한때 첫사랑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 <건축학개론>의 공간이 되었던 위미해변의 카페에 간다면 십만 년 전에 함께 출발했을지도 모를 별빛이 당도했을 것이란 환상을 심으며 겨울 제주를 찾았다. 열여덟 소녀도 아닌데 낮은 의자에 앉아 위미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아난티 서가에서 구입한 시집을 읽으며... 현무암 깊은 시간을 돌아 나온 녹색의 바다... 아 꿈이었다면 영원히 깨지 않아도 좋을 시간들...
‘어쩌면 십만 년 전 함께 출발했을지도 모를 산정의 별빛아래 이제야 도착하여 숨을 고르듯이...’ ‘ 지상의 사람들이 어둠 속으로 하나 둘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하는 때, 하필이면 우리는 이런 비탈진 저녁 산기슭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는가...’
시의 환상 속에 그를 만났으니 타입캡슐을 묻어두듯 팽나무에 <십만 년의 신화>를 걸어둔 것이다. 신화는 위미해안 팽나무로 태어나 십만 년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리라 상상하면서...
꿈길인 듯 어제의 시간들이 아련하다. 함께한 시간의 온기가 빠져나갈까 봐 눈을 깜빡거리는 것조차 아까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순간순간 그는 떠나 있고 순간순간 나는 그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가고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마음이 된다. 마음을 비우는 건 그래서 기억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바람과 함께 이제 그 기억을 풀어주어야 한다.
의식을 행하듯 나무 아래를 서성였다. 이젠 나무에 걸었던 의미를 풀어 주어야 할 시간이다. 나는 기억으로부터 가벼워지고, 나무는 의미로부터 가벼워지겠지. 생각이 머물지 않기를... 어떤 경우에도 민감해지지 않기를... 그냥 웃으며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감정 없이 귀 기울일 수 있기를... 그의 일상에 호기심이 없기를... 좋아하는 걸 찾기보다는 싫어하는 걸 하지 않기를... 낯선 도시 낯익은 풍경으로 있을 때는 그냥 웃어주기를...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몸속으로 흘려보냈다. 물이 지나는 길마다 온기가 번진다. 보이지 않는 길을 적시며 흐르는 물처럼 그에게로 나도 첫 아침의 첫물로 걷게 되리라. 뒤 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 간이역에 선 기차의 느린 마음으로 바라보리라. 언어는 언어의 무덤을 떠나와야 생명을 얻고 문학은 작가의 곁을 떠나와 완성된다. 결국 우리는 만나고 떠나야 온전해지는 존재이다. 팽나무카페를 나왔다. 햇살이 좋다.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난 뒤 생기는 허전함처럼 멍하다. 언젠가는 다가올 일을 내가 먼저 했을 뿐이라고 토닥였다.
교통통제에서 풀린 1100 고지로 가는 버스를 탔다. 회수정류장에서 내려 240번으로 환승하여 맨 앞자리에 앉았다. 잔설로 남은 대설주의보 흔적 위에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산의 내부로 갈수록 눈 덮인 봉우리는 순백의 눈을 보내 마중을 한다.
한나절이 지나서인가 산으로 가는 차량이 드물다. 다음 버스시간과 내가 걸을 수 구간을 감안하여 1100 고지 대신 영실 매표소에 내렸다. 영실매표소 주차장엔 하산객과 그들이 타고 온 차들로 빼곡하다. 이정표를 살핀 후 오백나한사로 가는 눈길을 걷는다. 숱한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은 눈이 녹는 속도와 같이하여 사라지고 있다. ᆢ한 생이 마감되는 것도 기억에서 소멸되는 것도 눈 녹는 속도와 같겠지.
청바지에 코트를 입은 운동화의 여자가 어설프게 오르는 산길이 위태로운지 아이젠과 스틱으로 등산채비를 한 사람들이 힐끔힐끔 붓질하듯 시선을 보낸다. 발아래 밟히는 눈의 비명과 잔설이 떨어지는 기척 그리고 거친 내 숨소리가 푸른 눈 위에 긴 그림자를 끌고 산을 오른다. 나는 긴 그림자를 보면서 나를 본다.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고유한 그림자를 가진다.
오백나한사 툇마루에 앉아 제주에일 맥주 캔을 땄다. 뚜껑을 밀어내는 기포소리가 크다. 막 첫 모금을 넘기는 때 전화기가 울린다. 처음이다. 공항에 내린 후로 전화기가 울린 것은.... 남자의 전화다. 오래된 맛 집을 찾았으니 이른 저녁 같이 먹자는 말이 괜히 반가웠다.
여행자의 입맛으로 북적이는 올레시장과 달리 제주 노인이 음식을 내는 식당은 제주사람들의 말로 채워지고 있다. 첫맛, 중간 맛, 마지막까지 맛과 향기가 다채로운 커피 코스타리카 게이샤처럼 옆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먹는 저녁에 마음도 느긋하다. 남자는 가끔 찾는 곳이라며 주인과 너스레를 떨었다. 옥돔구이와 몸국을 먹었다. 무엇이든 듬뿍 넣어주려고 애쓰는 주인과 흔한 유머로 웃게 해 주려는 남자를 보며 나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