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說 (웃음)

웃음도 연습이 필요해요

by 규린종희

열아홉 살 겨울 아침이었어요. 밤새 서리가 얼마나 내렸는지 마당에 쌓아둔 거뭇한 나뭇단에 눈이 온 줄 알았어요.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손과 문고리가 붙어 쩍쩍 소리를 내기도 하는 시골의 겨울은 참 매섭습니다.


더군다나 서리 내린 아침은 옷 속으로 파고드는 아침 기운이 더욱 쏴 해서, 허연 입김을 연신 불어가며 겨우 눈곱만 떼는 세수를 했어요.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어느 때는 뻣뻣하게 얼어 손으로 툭툭 털면 쌀가루처럼 얼음이 떨어졌어요. 그날 아침도 그런 세수를 했던 것 같아요.


얼굴을 닦고 대청마루에 걸린 성에 낀 거울을 소매로 쓱 문질러 닦았어요. 그러자 뿌연 거울에 소맷길 따라 울퉁불퉁한 길이 생겼어요. 거칠지만 말갛게 드러난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기 위해 허리를 굽혀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순간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면서 멈칫했습니다. 거울 속의 내 얼굴에 표정이 없는 거예요. 얼굴은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잖아요. 웃고, 즐겁고, 화나고, 울고, 삐치고, 지루한... 감정을 꼭꼭 숨기고 있어도 얼굴에 드러나게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내 얼굴엔 표정이 없는 겁니다. 표정 없는 얼굴, 사춘기의 복잡한 감정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깔거리는 꿈을 꾸며 여전히 가슴이 뛰는 감성 소녀였음에도 그런 희로애락의 어떤 것도 내 얼굴엔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내게 표정이 없었는 것은 집안의 서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외숙의 월북으로 인한 연좌제... 가족이 때로 감옥이라는 답답함...집성촌이 주는 폐쇄성에 오직 일기장을 빼곡하게 채우며 나를 열어갔던 청소년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그 누구도 없었지요.


칠 남매의 막내로 엄마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내리막으로 향하는 가세에 내 목소리를, 아니 정서적으로 고립된 내가 들이댈 수 있는 창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 단연 웃음 끼라곤 찾을 수 없는 얼굴이었지요.

순간 어떤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날 거울을 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앗 이게 나야? 이런 얼굴을 내가 했던 거야. 이러다가 친구들도 멀어지겠어’ 그때부터 거울을 보면서 날마다 세 번씩 웃는 연습을 했습니다. 올린 입꼬리에 관자놀이가 올라갈 수 있도록... 눈빛은 부드럽게 하여 정면을 향하고... 눈밑살을 끌어올려 눈도 웃을 수 있도록... 눈이 웃을 땐 눈썹도 웃는다는 걸... 입꼬리가 웃을 땐 귓불도 웃는다는 걸 웃는 연습을 통해 보았습니다.


웃음은 자존감을 높여주었고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를 열어주었지요. 처음엔 내 표정이 낯설어서 웃고, 그 다음엔 그런 내 표정이 웃겨서 씩 웃고... 그러다가 웃는 내가 좋아 웃었지요. 웃음이 주는 긍정... 웃음이 열어가는 관계와 세계... 그냥 웃고, 좋아서 웃고... 그러다 보니 웃음이 일상이 되어 이만큼 걸어왔고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웃음으로 걸어온 길... 이제는 잠시라도 웃는 근육을 내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라도 있나’하는 걱정을 듣게됩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웃고 말지요. 이즈음엔 표정만 웃는 것이 아니라 심장도 같이 웃습니다. 웃음으로 보는 세계는 부드럽습니다. 유연한 사고는 친밀도를 높여줍니다. 그러니 또 웃는 거지요.


웃음도 때로 연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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