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탄생
여름은 늘 바보들을 부른다.
고등학교 2학년 체육대회 날,
운동장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스피커에서는 음이 찢어진 음악이 흘러나왔고,
애들은 이유 없이 소리를 질렀다.
응원 문구가 적힌 피켓들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운동장 한가운데서는 진행 요원이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키웠다 줄였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소음 한가운데서
진용은 작은 상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한 달 내내 뛰어
모은 돈으로 산 목걸이였다.
계산대 뒤에서 도시락을 정리하고,
새벽에 걸레를 빨고,
아침 첫 차 시간까지 버텨야
겨우 모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상자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종이 상자가 미끄러졌다.
괜히 주머니에서 꺼냈다 넣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원래는 점심시간이 끝난 뒤,
사람이 조금 빠졌을 때 말할 생각이었다.
아니면 체육대회가 다 끝난 뒤,
문자로라도.
그런데 음악 소리가 커졌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운동장 중앙으로 몰렸고,
그 순간
이상하게도 발이 앞으로 나갔다.
마이크를 잡은 건
계획이 아니었다.
진용은 그냥
앞으로 걸어 나갔다.
운동장은 생각보다 넓었고,
다리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모래가 운동화 안으로 들어왔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발바닥이 밀렸다.
진행 요원이 뭐라고 말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마이크는
이미 진용의 손에 있었다.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그리고
생각보다 또렷한 목소리가 나왔다.
“저… 2반 ㅇㅇ를 좋아합니다.”
말이 끝나자
운동장이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공중에서 멈춘 것 같았다.
누군가는 웃을 타이밍을 놓친 얼굴로 서 있었고,
누군가는 박수를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그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건
뒤에서 터진 외침이었다.
“야!!!! 성 빼고 말하면 어떡해!!!
동명이인 세 명이라고!!!”
목소리는
너무 컸고,
너무 정확했다.
대진이었다.
그리고
쉼 없이 덧붙였다.
“야, 이건 고백이 아니라
학교 전체 상대로 퀴즈 내는 거잖아!”
그 순간부터
운동장은 다시 살아났다.
웃음이 터졌고,
박수가 나왔고,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었다.
체육대회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진용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려
상자를 제대로 쥘 수 없었다.
주머니에 상자를 쑤셔 넣고,
운동장 가장자리로 걸어 나왔다.
누가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괜찮냐는 말이었을 수도 있고,
장난이었을 수도 있다.
운동장에
더 있을 수 없다는 생각만
분명했다.
진용은
보건실로 향했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아스팔트 위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그때는 몰랐다.
그 고백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