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 6회

사료 포대의 낭만

by 김성훈


체인은 빠졌고,

타이어는 완전히 죽어 있었다.


페달을 밟자

림이 그대로 바닥에 닿았다.


지지직—


철이 아스팔트를 긁었다.


셋은 동시에 멈췄다.


지도에 표시해 둔 바다는

아까랑 똑같은 자리에 있었고,


줄어든 건

체력뿐이었다.


길가에는 그늘이 없었다.

국도와 햇빛뿐이었다.


대진이 자전거를 내려다봤다.


“내 바퀴 왜 이러냐.”


무환이 물었다.


“왜.”


진용이 고개를 숙여 봤다.


“바람 다 빠졌는데?”


대진이 잠깐 멈췄다.


“여행 끝난 거 아니냐.”


진용이 땀을 훔쳤다.


“끝난 건 네 인생이고.”


대진이 피식 웃었다.


“내 인생은 모르겠고

얘는 끝났는데.”


타이어를 한 번 눌렀다.


푹—


잠깐,

셋 다 말이 없었다.


햇빛만 뜨거웠다.


대진이 말했다.


“어떡하냐.

근처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무환은 이미

가방을 열고 있었다.


작은 파우치가 나왔다.


펑크 패치 세트,

미니 펌프,

체인 공구.


대진이 말했다.


“와.

이런 건 또 언제 챙겼냐?”


무환이 말했다.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냐.”


진용이 짧게 웃었다.


무환이 말했다.


“됐고.

빨리 보자.”


체인을 다시 걸고,

바퀴를 뺐다.


튜브를 꺼냈다.


무환이 물을 조금 부었다.


잠깐 뒤

기포가 올라왔다.


“여기.”


대진이 쭈그려 앉은 채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어디.”


“거기 말고 옆.”


대진이 얼굴을 더 들이밀었다.


“안 보이는데.”


“가까이 오지 마.

아가리 똥내난다.”


진용이 말했다.


“그 입 다물라.

타이어 삭겠다.”


대진이 웃었다.


“와, 둘이 하나 잡네.”


무환이 패치를 뜯었다.


대진은 쭈그려 앉아

그걸 보고 있었다.


“그걸로 되냐.”


“되니까 들고 다니지.”


“나도 하나 살까.”


“넌 자전거부터 바꿔.”


대진이 웃었다.


“넌 얼굴부터 바꾸고.”


진용이 말했다.


“둘 다 바꿀 거 천지네.”


그때였다.


멀리서

낡은 트럭 한 대가 보였다.


국도를 따라

천천히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진용이 먼저 말했다.


“야.

트럭 온다.”


셋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무환은 잠깐 망설이다가

도로 쪽으로 한 걸음 나갔다.


손을 들었다.


진용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대진이 작게 말했다.


“제발 좀 서라.”


트럭이 가까워졌다.


지나치나 싶었는데,


끼익—


국도 옆에

천천히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왔다.


햇빛에 그을린 아저씨가

셋을 내려다봤다.


“아따 청춘이네.

자전거 여행이냐.”


진용이 고개를 들었다.


“네.”


아저씨가 타이어를 한번 보고 말했다.


“펑크 났네.”


진용이 멋쩍게 웃었다.


“예.

좀 전에 퍼졌어요.”


아저씨가 물었다.


“어디까지 가는데.”


“바다요.”


“그걸로 바다까지 가게?”


진용이 머쓱하게 웃었다.


“쉽진 않네요.”


아저씨가 셋을 잠깐 보더니 말했다.


“올라타.

마을까진 간다.”


셋이 동시에

서로를 봤다.


대진이 먼저 웃었다.


“살았다.”


진용도 짧게 숨을 뱉었다.


무환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턱으로 뒤를 가리켰다.


“뒤에 타라.”


셋이 트럭 뒤를 봤다.


포대가 가득 실려 있었다.


잠깐 조용했다.


대진이 말했다.


“… 야.”


진용이 물었다.


“왜.”


“저기 사람 타는 데 맞냐.”


무환이 말했다.


“사람 타는 데지.

넌 탈락.”


대진이 웃었다.


“그럼 저긴

자전거들만 타는 거네.”


자전거를 들어 올렸다.


포대 위에 올렸다.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셋도 따라 올라탔다.


발밑이

생각보다 푹 꺼졌다.


힘을 주면

안으로 조금 더 잠겼다.


진용이 아래를 한 번 봤다.


“… 이거 은근히 무섭다.”


트럭이 출발했다.


덜컹—


셋이 동시에 자전거를 붙잡았다.


한 번 더 덜컹—


이번엔

자전거보다 자기 몸부터 잡았다.


그 순간

트럭이 크게 흔들렸다.


대진 몸이 옆으로 밀렸다.


“어어—”


진용이 급하게 붙잡았다.


“야, 야.”


대진이 헐떡였다.


“와 떨어질 뻔.”


무환이 말했다.


“아까비.”


잠깐,

셋 다 말이 없었다.


진용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봤다.


“하늘 참 예쁘네.”


무환도 하늘을 보며 말했다.


“거기에도 예쁜 애 있겠지?”


진용이 웃으며 말했다.


“있긴 있겠지.

너완 상관없겠지만.”


트럭은 마을 입구에서 멈췄다.


“여기서 내려.”


아저씨는 담배를 물었다.


셋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트럭은 그대로 떠났다.


마을은 작았다.


구멍가게 하나,

세탁소 하나,

낡은 간판 몇 개.


그리고 조금 안쪽에

자전거 수리라고 적힌 간판 하나가 보였다.


셋이 거의 동시에

그쪽을 봤다.


대진이 말했다.


“야, 저기다.”


가까이 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셋이 멈췄다.


문 앞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외출 중.

금방 옵니다.


대진이 종이를 읽었다.


“이 금방이 제일 무섭다.”


무환은 바로

다시 튜브를 꺼냈다.


대진이 말했다.


“너 좀 멋있다.”


무환이 짧게 말했다.


“펌프나 잡아.

입은 똥내 나니까 저쪽으로.”


패치를 붙였다.

꾹 눌렀다.


대진이 쭈그려 앉아

펌프를 잡았다.


슉.

슉.

슉.


몇 번 넣다가

표정이 바뀌었다.


“야.”


무환이 손을 멈추지 않고 물었다.


“왜.”


“팔 아픈데.”


“계속해.”


대진이 웃었다.


“너무하네.”


진용이 옆에서 말했다.


“아까부터 안 아픈 데가 없냐.”


대진이 펌프질을 멈췄다.


“진짜 안 들어간다.”


무환이 뺏었다.


“비켜.”


슉, 슉, 슉.


공기가 조금씩 찼다.


진용이 옆에서

타이어를 눌러봤다.


이번엔

푹—

소리가 나지 않았다.


셋이 동시에

타이어를 봤다.


대진이 말했다.


“됐다.”


무환이 짧게 웃었다.


자전거를 세웠다.


바퀴가

다시 둥글게 섰다.


그 순간이었다.


대진 배에서

길게 소리가 났다.


꼬르르륵—


잠깐 조용했다.


진용이 웃었다.


“얘는 바퀴보다

배가 더 급하다.”


대진이 배를 눌렀다.


“아까부터 급했어.”


무환이 자전거를 돌렸다.


“가자.”


“어디.”


“뭐라도 먹게.”


셋은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해는 조금 기울어 있었고,

바다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뭐라도 안 들어가면

셋 다 먼저 쓰러질 얼굴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다시 굴러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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