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 7회

삼각김밥 하나

by 김성훈


여행 이틀째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틀째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해가 완전히 뜨기도 전,

편의점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문을 열자

익숙한 소리가 났다.


띠링—


에어컨 바람이

훅 들어왔다.


셋 다

잠깐 멈췄다.


시원했다.


그게

너무 좋았다.


대진이 먼저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고 시원하다.

이제 좀 살겠네.”


진용도

진열대를 보고 있었다.


참치,

김치,

불고기.


손이

한 번 나갔다.


멈췄다.


가방이

등에 닿았다.


그때

무환이 말했다.


“잠깐.”


주머니를 뒤졌다.


가방을 열었다.


지퍼를 끝까지 내렸다.


안쪽까지 손을 넣었다.


다시 뒤졌다.


말이 없었다.


대진이 말했다.


“그런 장난은 재미없다.”


무환이 말했다.


“봉투 어디 있냐.”


“무슨 봉투.”


“회비.”


잠깐 조용했다.


진용이 말했다.


“너 어제 넣었잖아.”


“넣었지.”


“그럼.”


무환이 가방 안을

다시 뒤졌다.


없었다.


대진 표정이 굳었다.


“진짜 잃어버린 거야?

아침에 넣는 거 본 것 같은데.”


무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응.

출발할 때까진 있었어.”


“확실해?”


“아침에 물병 넣을 때 봤다.”


잠깐 침묵.


진용이 낮게 말했다.


“그럼 중간에 빠진 거네.”


어디서 빠졌는지도 모르니까

돌아가지도 못했다.


돌아가도

찾을 데가 없었다.


대진이 허탈하게 웃었다.


“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네.”


무환이 짧게 말했다.


“카드도 없잖아.”


잠깐 더 조용했다.


대진이 말했다.


“공금으로만 움직이자 해서

아무것도 안 챙겼는데.”


진용이 냉장고를 봤다.


“좋다.

이제 우린 현금도 없고

카드도 없고

얼굴만 남았네.”


대진이 말했다.


“그러게.

돈 안 되는 것만 남았네.”


냉장고 안에서

삼각김밥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대진이 중얼거렸다.


“일단 나가자.

민폐다.”


무환이

주머니를 다시 뒤졌다.


구겨진 지폐 하나가

나왔다.


오천 원이었다.


대진 눈이 커졌다.


“어 돈 있네?

장난친 거야?”


“아니.

비상금.”


무환이 가격표를 봤다.


잠깐 계산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하나만 사라.”


대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왜 세 사람인데.”


무환이 짧게 말했다.


“물 사야 해.”


잠깐 침묵.


대진이 냉장고를 봤다.


삼각김밥을 봤다.


생수를 봤다.


다시 삼각김밥을 봤다.


“이참에 살이나 좀 빼야겠다.”


진용이 말했다.


“살만 빼라.

개념은 그만 좀 빼고.”


무환이

삼각김밥 하나를 집었다.


참치였다.


대진이 말했다.


“왜 하필 참치냐.”


“무난하니까.”


“이 와중에 무난 찾는 것도 재주다.”


계산대에서

삑—


소리가 났다.


생수도 하나 샀다.


다시

삑—


셋은

편의점 앞 난간에 앉았다.


포장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대진이 말했다.


“난 안 먹는다.”


무환이 말했다.


“개소리하지 마라.”


김밥을

반으로 나눴다.


두 조각이

애매하게 나왔다.


진용이 말했다.


“봐라.

양도 사람 무시한다.”


무환이 한 조각을

진용에게 건넸다.


남은 반쪽을

대진 쪽으로 내밀었다.


“먹어.”


대진이 잠깐 버티다가

결국 받아 들었다.


“하…

이건 먹는 게 아니라

증거인멸이다.”


셋은

조용히 씹었다.


무환이 말했다.


“야.”


“왜.”


“나

참치 쪽 먹었냐.”


진용이 말했다.


“아니.”


“근데 왜

참치 맛이 나냐.”


진용이 말했다.


“대진이 보면서 먹었냐?

생선처럼 생겼잖아.”


대진이 말했다.


“그럼 넌 감자맛 나겠네.

불량감자처럼 생겨서.”


진용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나는 고소한가 보다.”


대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꼬소하이 쳐쥑이네.”


삼각김밥은

금방 없어졌다.


배는

하나도 안 찼다.


생수는

더 빨리 줄었다.


대진이 물병을 들고 말했다.


“이제 어떡하지?”


무환이 자전거에 올랐다.


“가자.”


“어디.”


“뭐라도 벌 데.”


대진이 물었다.


“우리가?”


진용이 말했다.


“아니 너만.

자전거 앞에 엎드려만 있어도

수억 벌겠다.”


대진이 자전거를 끌며 말했다.


“고무장화 하나 주워와라.

양발 끼고 엎드려 있을게.”


편의점이

뒤로 멀어졌다.


배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허벅지는

가만히 있는데도 묵직했다.


대진이 먼저 말했다.


“야.”


“왜.”


“나 진짜 아무 데서나 일할 수 있다.”


무환이 물었다.


“예를 들면.”


대진이 말했다.


“이쁜 여자 있는 곳.”


진용이 말했다.


“그 애들은 무슨 죄냐.”


셋이 동시에 웃었다.


국도 옆으로

낡은 식당 하나가 보였다.


문 앞에

영업 준비 중

팻말이 걸려 있었다.


셋은

거의 동시에

브레이크를 잡았다.


대진이 먼저 내렸다.


“여기 가보자.”


무환이 물었다.


“뭐라고 말하게.”


“사람 냄새나게 말해볼게.”


진용이 말했다.


“입냄새나 안 나게 해라.”


셋이 문 앞에 섰다.


안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문이 먼저 열렸다.


앞치마 두른 아주머니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셋은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아주머니 시선이

셋의 얼굴에서

자전거로,

자전거에서 땀에 젖은 옷으로

옮겨갔다.


표정이 조금 식었다.


대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왜.”


대진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 잠깐 일 도와드리고

밥 한 끼만—”


“안 써.”


문이 닫혔다.


셋은

그 앞에 그대로 섰다.


대진이 말했다.


“… 나 아직 미소 안 거뒀는데.”


무환이 자전거를 돌렸다.


“그게 문제였나 보지.”


진용이 말했다.


“넌 얼굴부터가

계약직도 불안하다.”


대진이 말했다.


“어허이 얼굴은 정규직이지.”


셋은 다시 달렸다.


진용은

앞을 보며 페달을 밟았다.


가방 끈이

어깨를 눌렀다.


괜히

더 세게 밟았다.


해는 더 올라왔고,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이번엔

과일 가게가 보였다.


복숭아 상자가

문 앞까지 쌓여 있었다.


셋은

다시 멈췄다.


진용이 먼저 내렸다.


“이번엔 내가 할게.”


대진이 말했다.


“그래.

넌 아직 인간적으로 보인다.”


진용이 주인 쪽으로 갔다.


“저기,

혹시 옮길 거 있으면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주인이 손을 멈췄다.


셋을 봤다.


자전거를 봤다.


땀에 젖은 옷을 봤다.


그리고 말했다.


“돈 없냐.”


잠깐 침묵.


대진이 바로 말했다.


“예 없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주인이 피식 웃었다.


“솔직하네.”


무환이 말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주인이 상자를 다시 들며 말했다.


“여긴 됐고,

저 아래 밭 쪽 가봐라.”


셋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밭이요?”


“수박밭.

요즘 사람 없어서

맨날 바쁘더라.”


무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 같은 애들도

일할 수 있을까요?”


“가서 물어봐.

근데 너네 같은 애들

한 시간 하고 허리 잡는다.”


대진이 말했다.


“얘네들은 허리 쓸 일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진용이 옆구리를 쳤다.


“말 좀 줄여.”


주인이 손을 내저었다.


“쭉 내려가면

비닐하우스 지나서 나온다.”


무환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셋은

가게를 나왔다.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배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다리도

여전히 무거웠다.


대진이 앞에서 말했다.


“야.”


“왜.”


“나 오늘 일당 받으면

편의점 문부터 열고 들어간다.”


무환이 말했다.


“나도.”


“뭘.”


“보이는 거

다 먹어치운다.”


진용이 웃었다.


“돈 받기도 전에

위장부터 풀가동이다.”


국도 옆으로

초록이 길게 이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비닐하우스 지붕이

햇빛을 받고 번들거렸다.


대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야.

저기가 우리 밥줄이냐.”


무환이 말했다.


“가 보면 알겠지.”


진용이 앞을 봤다.


“가자.”


셋은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집에 가자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끼니를 벌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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