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웃지요
뭘 해도 가장 예뻤던 나의 스물일곱, 그 나이 때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결혼이었다. 어릴 적부터 내 꿈은 엄마였고,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 내 목표였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지만, 결혼 전 연애라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스물일곱의 결혼은 물 건너갔었다. 3년이라는 연애 이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기혼자가 이 글을 본다면,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는 결혼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걸 300% 공감할 거다. 누구보다도 우리의 사랑은 달달했고, 매일 만나도 보고 싶고, 집으로 가는 그 길이 매일 서운하고 아쉽기만 했었던 우리였는데, 결혼을 위한 첫 번째 문을 열었을 때 생각보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어머님 아버님과의 첫 식사>
그간 여러 번 인사를 드리곤 했었지만,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공식적인 첫 식사 자리를 갖기로 했었다. 시댁 근처 곱창집에서 뵙기로 했었고, 그 당시 아버님은 술을 많이 좋아하셨다. 참고로 우리 남편은 5살 터울의 형이 있다. 고로 아들만 있는 집으로 나는 시집갈 준비를 했다. '맞아요!'만 반복하면서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버님은 나를 많이 좋아해 주셨고, 다음에도 또 만나서 맛있는 걸 먹자고 하셨었다. 우리 어머님은 우리 엄마와는 아주 많이 다른 사모님 같으신 분이다. 패션에도 일가견이 있는 분이셨고, 첫 만남에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셨던 기억이 아주 생생했다. 식사 중 분위기를 흩트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어머님 아버님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남편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미래의 시부모님과의 대화에서는 '우리 ㅇㅇ를 데려가줘서 고맙다' 등등 나를 위한 얘기도 오갈 줄 알았는데, 그날의 대화가 나에게는 엄청난 벽을 만들어 버렸다. 내가 던졌던 남편의 칭찬에 우리 어머님은 "땡잡은 줄 알아!" 라며 내가 받을 상처를 생각하지 않고 말을 뱉어버리셨다. 그 순간에는 "아휴 그럼요!"하고 넘겼지만, 몇 주가 흘러도 내 머릿속에는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다행히도 어머니가 그 말을 뱉으셨을 때, 아버님께서는 버럭 소리를 지르시며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집에 가라"며 어머니를 나무라 치셨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님의 한마디가 나를 많이 위로했던 것 같다. 쉽지 않았던 시부모님과의 첫 식사 자리, 식도 하기 전부터 나는 우리의 결혼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직감했고, 그날부터 어머님과 무너지지 않을 법한 돌벽을 쌓기 시작했다.
<청천벽력 같은 새드 뉴스>
식사 자리 이후 나는 어머님이 많이 미워졌다. 어머님이 분명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고, '나도 귀한 딸이다' 모드로 모든 게 다 상처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견례 자리를 마치고 며칠 후, 아버님은 급격하게 살이 빠지셨고, 종합 검진을 받아보기로 하셔서 우리는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만 기다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나의 남편의 눈물을 보았다. "내가... 다른 거 달라고 한 번도 기도한 적 없었고, 우리 식구 모두 건강하게만 해달라고 항상 기도했는데 왜 우리 아빠한테.." 그날 이후로부터 우리 아버님은 혈액암 환자가 되었다.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 중 암환자는 아버님이 처음이었고, '암'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서웠다. 우리 식 날까지 아버님이 버텨주실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식을 당겨야 하는 건 아닌지... 왜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암환자 아버지를 둔 우리 남편이 너무 불쌍했다. (구독자 분들이 놀라실까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희 아버님 항암 잘 받고 1년 가까이 회복 중에 계세요 :) )
<괜찮아 며느라>
'며느라기'라는 드라마를 즐겨봤었다. '그건 너무 극단적이고, 남주가 못된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고 봤던 그 드라마에 어느 날 내가 그 드라마의 여주가 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의 결혼 준비의 첫 시작은 아주 우울했다. 내 마음이 우울해질 때면, 이미 결혼한 언니들을 찾아가 상담을 받곤 했다. 다들 각자의 본인만의 이야기로 분노가 가득 차고 어쩌면 내가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은 나를 위로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생각이 많으면 나를 너무 힘들고 피곤하게 만드는 법! 둘만의 행복한 상상만 하기에도 챙겨야 할 게 너무 많은 요즘 세상의 결혼 준비이기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으며 마음 아파하지 말았으면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듣지도 전해 주지도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나는 그당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나는 아주 많이 걱정하며 그 미움의 덩어리를 키워 가고 있었다.
<엄마가 날 위로하네>
결혼 준비의 3개월 차 정도 되었을까 미국에 사는 오빠와 통화를 하는 중, 내가 이런 얘기까지 들으며 결혼 준비 해야 하는 거냐며,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냐며 열변을 토했고, 그 자리에서는 함께 듣던 새언니도 있었다. 한 15분을 혼자 구시렁대었을까, 오빠가 딱 한마디를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야! 너네 엄마도 2등 아니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아! 나도 ㅇㅇ이랑(새언니) 같이 있을 때 엄마 전화 오면 진짜 민망할 때 많다. 괜한 걸로 혼자 질질 짜지 마라" 사실 전화를 끊고도 많이 놀랐었다. 이전에 아는 언니가 얘기하기를 본인 남편은 시어머니가 잘못해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동안 내가 함께 살았던 엄마의 모습이 아닐 때 우리는 늘 부인하고 내가 좋은 엄마로 기억하나 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 새언니도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지 싶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충격은 가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