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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또랑진 여름날

아아 아버지 그립습니다

by 에밀리

장마철이면 그날의 기억, 젖은 황톳길을 달리는 자전거 탄 풍경이 떠오른다. 동생은 앞에서 나는 아버지 등 뒤에 앉아서 물웅덩이 신작로를 덜컹거리며 달린다.


산과 들에 나무와 풀포기가 흔들려 보이고, 큰물 져서 또랑이 급하게 물결치며 흐르고, 날이 어둑해지고 있다.


아무런 고민도 걱정도 없었던 그 시절,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싱그러웠고 파란 하늘만큼이나 밝은 빛으로 일상이 이어졌다. 전교생이 팔십 명 정도인 동상국민학교는 우리 집에서 십 리 거리의 마을에 있었다.


푸른색, 붉은색 지붕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산동네는 그림 같았다. 마을가옥 아래로 짙푸른 호숫가가 생각난다. 햇살에 반짝이는 잔물결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들장미 소녀 캔디’ 풍경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1982년 여름날에 소낙비로 끝나길 바랐던 장대비가 요란하게 한참을 내렸다. 학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은 삽시간에 물이 차올랐고, 지대가 높은 학교로 주민들이 피신해 왔다. 학생들도 수업이 끝나고 전교생이 한 곳에 모여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겁에 질려서 숨 죽이는 시간이 흘러갔다. 마치 이대로 모두가 잠기고 아버지도 엄마도 못 볼 것만 같았다. 동생의 오들오들 떨던 숨결이 전해져 더 두려웠다. 낮인데도 어둑해지고 천둥소리가 쾅쾅 천지를 흔들었다. “노아의 홍수’를 떠올리며 우리는 모두 떨고 있었다. 자연의 미약한 한 점으로, 속수무책 몇 시간이 흘러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엄마 아버지도 무사하셔야 할 텐데!’ 온갖 재난의 현장이 떠오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 지대가 높은 운동장 진입로에서 더 이상 수위는 오르지 않고 비가 그쳤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늘은 잿빛 얼굴을 거두고, 하얀 미소가 살랑이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큰비에 놀라 날아갔던 산새도 돌아와 배롱나무를 간지럽히며 지저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여있던 물이 점차 빠지고, 내 기억 속의 가장 젊은 아버지가 달려오셨다. 참았던 울음을 와락 터뜨리며 아버지에게 안긴 어린 동생은 자전거 앞에 올라타고 나는 아버지 등 뒤에 앉았다. 아버지는 머리며 셔츠도 바지까지 다 젖어 있었다.


마흔 줄에 본 늦둥이 두 딸들 걱정으로 험한 길을 헤쳐온 지천명의 아버지는 '캔디'의 '테리우스' 보다도 더 멋진 든든한 수호천사! 세상 두려울 것 없이 삼천리 자전거는 삼부녀가 부르는 뜸북뜸북 노랫소리에 덜컹거리며 천천히, 가끔씩은 아버지만 내려 우리를 끌면서 그렇게 달리고 있었다.


2022년 여름, 강남역 인근에 집중호우로 둥둥 떠다니는 차들을 보면서, 나 또한 열두 살 아들을 데리러 물길을 헤쳐 걸으면서 알았다. 인간으로서의 공포와 부모로서 가슴 뛰는 무모한 사랑! 그것은 지치고 고단한 날들을 섬광처럼 비추어 일으켰다. 심신이 병약한 나를 귀히 여기며 정성으로 살피던 손길이 늘 나로서 살게 하고 도전하게 하였다.


'울빼기(울보)'였던 나는 2남 2녀 엄마로 살면서 어렴풋했던 그날의 기억이 더 선명해진다. 오늘처럼 장맛비가 온종일 내리는 날은, 사십 년 전의 그날이 생각난다. 산길에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던 아버지의 가뿐 숨소리와 땀 내음에 안도해 하던 여름날이 더욱 생생하다.


아버지는 열다섯 명의 손자녀 중에 막내아기, 우리집 넷째가 첫돌 무렵에 떠나셨다. 볕이 따스한 1월에,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태극기를 두르고 당당하게 엄마에게 가셨다.


"아버지가 내 아버지여서 참 좋았어!

오 남매의 아버지로 한평생 너무 힘드셨지요. 아버지 사랑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사랑해!" 파랗게 식은 아버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 어린 사랑고백으로 보내드릴 수 있어서 홀가분하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쓰면서 더 선명해져 그림처럼, 사진처럼, 영상이 되어 보이고 세세한 숨결까지 느껴지다니!


자전거 탄 아버지 등 뒤에서 마냥 안심하고 행복했던 그 시절, 나의 아버지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쓰면서 몇 번이나 눈물 주룩, 멈추었다가 다시 쓰고 또 쓰다가 울고 그러면서 나는 가벼워지고 편안해졌다.


고3 딸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 얼마나 간절한지, 애절한지, 내 부모님의 바람을 아이들을 통해 알아간다. 나 또한 꽃이었고 꿈이었고 기쁨이었는데 아이들을 보며 이제야 깨닫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바라만 봐도 닳을세라 아까운 딸'이었던 시절에는 몰랐다. 아이들처럼 나도 몰랐다. 얼마나 그 사랑이 크고 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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