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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힘들어!

by 에밀리



요즘은 자꾸 입 안에서 단내가 난다. 피곤하다는 몸의 신호가 은근히 신경 쓰인다. 아이들의 진학을 차례로 챙기며 걸어온 기나긴 여정, 마음속 말하지 못한 문장이 자꾸만 떠다닌다. ‘쉬고 싶다’는 속삭임이, 어느새 내 안에서 맴돈다.


아이들이 입시의 문 앞에서 가파른 길을 오르고 있을 때, 나 역시 그 옆에서 숨차게 같이 달렸다. 새벽마다 깨어나 시계를 보고 또 보고 제대로 잠들 수가 없었다. 빽빽한 일정표를 조율하고, 불안한 기색을 숨기려 애써 웃던 날들도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며 나무들이 잎새를 털어내는 모습을 본다. 화려한 빛깔로 불타오른 뒤 조용히 내려놓는 그 과정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제는 괜찮다’고, 바람이 다독이는 듯했다. 아이들 진학을 위해 꽉 움켜쥐었던 긴장과 책임의 잔가시들이, 하나둘 바스러져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엄마라는 이름은 매번 다음 계절을 향해 달려가길 요구받는다. 하지만 이제는 잠시 발을 멈추어도 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성장했고, 저마다 자기 계절의 속도로 익어가는 중이다. 나는 긴 여정을 완주한 사람처럼, 고요한 들판에 선 기분으로 뒤를 돌아본다. 고단했지만, 그만큼 단단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입시가 끝나면 홀가분하게 날아가고 싶다는 마음, 어쩌면 새로운 가을을 맞이하겠다는 선언일지 모른다. 잎을 떨군 나무가 다시 봄을 준비하듯, 나도 새로운 시간을 위한 여백을 누리고 싶다. 묶여있던 것들이 서서히 풀리는 이 계절 끝에서 비로소 나 자신을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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