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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사 남매에게

by 에밀리



오래도록 나는 목석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기질, 말하기보다 속으로 삭이는 편을 택했다. 해외살이의 고독과 낯선 환경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나이 들어가며 삶이 요구하는 여러 층위의 책임은 자연스레 내면의 결을 달리 깎아냈다. 무엇보다, 아이 넷을 품고 길러낸 시간이 삶을 새로이 빚어냈다.

여전히 성향 검사에서는 내향인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를 외향인으로 안다. 무대 위에서도, 강단 앞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말을 잇는 모습을 보고서 그런 판단을 내리는 듯하다. 예전에는 말 한마디 꺼내기 전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말을 더듬었다. 낯선 시선 앞에서 마음을 쉽게 못 열었고, 긴장감이 금세 드러나곤 했다. 그런 내가 변했다는 사실이 종종 낯설게 느껴진다.

어느덧 어떤 상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삶의 무게를 버텨낸 시간이 내면을 단련했고, 다양한 경험이 나를 하나의 ‘안정된 축’으로 세웠다. 두려움이 내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도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자식들 앞에서는 호흡이 가빠지고 때로는 숨이 멎는 듯 아찔하다.

아이 넷을 통해 나의 옛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선택 앞에서 흔들리고, 열정을 불태우고, 절망하고, 다시 일어서는 그 섬세한 결. 무엇을 해도 온 마음을 걸어야만 하는 성향. 그 진지함과 불안이 뒤섞인 표정이 과거의 나를 데려오듯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어미가 모르는 새로운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할지, 그럼에도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여정이다.

오늘도 모정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유연해진다. 사 남매를 바라보며, 더 깊고 다채로운 세상을 활짝 열었다. 내가 삶의 바람에 깎여 지금의 형상이 되었듯, 아이들 역시 자기만의 질감과 결을 만들어 가며 성장해갈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때로 아프면서도 따로 벅차다.

4인 4색, 아이들은 저마다의 소리와 빛을 품은 존재로 내일을 열어 가고 있다. 나는 조용히 등불 하나를 건네고 싶다. 저 먼 무대까지 흔들림 없이 걸어가길 바라며, 아직도 떨리는 마음을 간절히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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