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은 언제나 시간을 멈춰 세우는 힘이 있다. 사물의 윤곽을 덮으면서도, 오히려 마음의 결은 또렷하게 드러나게 한다. 티나의 첫 독주회 날 내린 눈도 그러했다. 무대 위에 선 그 순간, 하늘은 흰빛을 내려 주며 축복을 건네고 있었다.
눈발을 맞으며 들어오던 지인들의 모습을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다. 차갑게 젖은 외투보다 먼저 보였던 것은, 얼굴에 깃든 표정이었다. 푹푹 쌓이는 눈길에도 첫걸음을 함께 하려는 온기가 고마웠다. 그 마음은 무대 위에 티나의 떨림을 잔잔히 가라앉혀 주었다.
티나의 음악 여정은 끝없는 연습과 자기와의 싸움, 울음을 삼킨 날들, 회한이 뒤섞였던 밤들,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게 한 신념과 의지. 그 흔들림이 오늘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혼자 견딘 줄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떠받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독주회 날의 객석은 성장을 함께 바라보는 응원의 마음이 녹아 있었다. 아트홀 가득 채우는 소리는 첼로와 피아노만이 아니었다. 고요한 마음들의 울림까지 합쳐져 웅장한 콘체르토가 이어졌다.
첫눈처럼 쌓여가는 이 감동의 결을 오래 간직하려 한다. 첫걸음을 기꺼이 지지해 주는 마음, 그 숨결을 받아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그리고 모든 순간을 품고 더 깊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다짐. 그날의 따스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12년, 한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딸아이에게 내어준 귀한 손길들에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