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숲길에서

by 에밀리


사려니숲길에 들어서면, 삼나무가 하늘을 떠받치듯 곧게 서 있고, 낮은 자리로 이끈다. 그늘과 빛이 교대로 지나가며 마음의 속도를 조율한다. 급할수록 길은 멀어지고, 서두를수록 숲은 더 깊어진다. 돌아갈 줄 알 때, 숨은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다.

두 딸과 두 아들, 사 남매와 함께하는 일상은 숲의 층위처럼 겹겹이 쌓였다. 울음과 웃음이 같은 계절에 피고 졌고, 서로 다른 박자의 성장통이 한 지붕 아래서 울렸다. 나는 네 방향을 동시에 바라보며 걸어야 했다. 한 아이의 손을 잡으면, 다른 아이의 그림자가 길 밖으로 기울었다. 그때마다 선택은 불안했고, 마음은 늘 분주했다. 사랑은 넉넉한 품이 아니라, 모자란 팔로 끌어안는 일이었다.

숲길에서는 넘어질 듯하면 나무뿌리가 몸을 받쳐 주고, 미끄러질 듯하면 돌부리가 속도를 낮춘다. 아이들도 그렇게 자랐다. 미처 닿지 못한 곳에서 누군가의 손이 그들의 균형을 잡아 주었다. 부모의 일은 모든 길을 닦는 것이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백을 남기는 일임을 숲은 말없이 가르친다.

아이들이 잠들던 밤, 나의 밤도 함께 길어졌다. 후회와 다짐이 찾아와 숨을 흔들었다. 더 잘해 주지 못한 말들이 베개 위에서 되살아났고, 내일은 다르게 말하겠다는 다독임으로 하루가 밝아왔다. 숲의 아침처럼 전날의 상처는 이슬로 덮이고, 어제의 소음은 새소리로 바뀌었다. 회한은 밤에 머물렀고, 희망은 아침에 도착했다.

자녀는 부모의 성취가 아니라 동행이라는 것을, 사려니숲길을 걸으며 '함께의 무게'를 배운다. 앞서 걷는 아이만을 따라가지 않고, 뒤처진 아이를 재촉하지 않는다. 숲은 어느 나무도 비교하지 않는다. 그늘도, 빛도 저마다의 몫을 받는다.

자녀를 키우는 일은 방향을 잃지 않도록 옆에 서는 일이다. 손을 놓아야 할 때와 잡아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 숲은 같은 자리에서, 기다림이 곧 양육임을 보여 준다. 다그치지 않아도 자라는 것이 있고, 지켜보아야만 단단해지는 것도 있다.

돌아보면 함께한 날들은 사려니였다. 오늘도 울퉁불퉁한 시간을 건넌다. 여섯 식구가 숲을 걷듯이 서로를 바라본다. 앞서 걷는 등을 보고 안심하고, 뒤에서 머뭇대는 발걸음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