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의 또래 여자들과 비교하면 키가 꽤 큰 편이다. 175센티.
어릴 때는 그 사실이 늘 불편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 힐을 신어본 적도 없었고,
단체 사진을 찍을 때는 항상 맨 뒤에 자리했다.
그러다 독일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그 오랜 콤플렉스가 사라졌다.
나보다 큰 여자들이 많았고 나는 그저 ‘평균’이었다.
아무도 나를 크다고 바라보지 않았고,
사진을 찍을 때 어디에 서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미국에 와서는 키가 오히려 나의 개성이 되었다.
누군가가 내 키를 평가하거나 불편해할 일도 없었다.
스포츠를 즐기는 생활 속에서는 오히려 큰 키가 큰 장점이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변한 것은 내 키가 아니라, 내 키를 바라보는 ‘기준’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기준은 언제나 내가 속한 환경이 만들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람의 가치관도 마찬가지다.
어떤 곳에서는 당연한 것이,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이곤 한다.
문제가 있는 건 내 생각이 아니라,
그 생각을 받아들이는 집단의 렌즈가 달랐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남을 잘 챙기고 정이 많은 내가 사교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처음엔 다소 낯선 친절로 느껴질 수 있었다.
그들은 급한 친밀감보다 시간을 두고 쌓이는 신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나의 따뜻함이 ‘friendly’하고 ‘warm’한 성향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때로는 상대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도록 거리를 지키는 것이 배려라는 것도 배웠다.
남편의 분석적인 성향도 그랬다.
한국에서는 가끔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으로 보였지만,
논리와 근거를 중시하는 독일에서는
그의 설명이 오히려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미국에서는 그 분석적인 면이 하나의 능력으로 평가받았다.
감정보다 근거를 중심으로 말하는 방식은
‘차갑다’기보다 ‘신뢰할 수 있다’는 인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내 안의 고정된 어떤 성질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느냐였다.
한 환경에서는 튀는 사람이,
다른 환경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이제는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맞아주는 환경을 선택하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