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고를 냈고, 나는 하루를 잃었다

by 제이

자본주의 나라 미국에서 살다 보면,
생활 곳곳에서 빈부의 격차를 실감하는 순간이 많다.
상상하기 어려운 부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하루 벌어 살아가는 사람도 이웃으로 존재한다.


“쾅.”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평소와 다름없이 집으로 돌아오던 길,
누군가 내 차 뒤를 박았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고, 도로는 한가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할 일이 많은데,
이걸 해결하려면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을 따로 만들어 써야 하겠구나.
아, 귀찮다.


일단 차를 한적한 길가에 세우고 나도 차에서 내렸다.
백인 남자가 차에서 내려 미리 준비한 운전면허증과 연락처, 보험 카드를 내밀었다.
“미안해요. 제 잘못이에요. 부주의했어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차라 수리비가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고가 나면 도망치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유난히 침착했다.
“제 비서가 다 처리해 줄 거예요.”


보통 사고가 나면, 한쪽은 거짓말을 하며 자신이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시간을 끄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는 그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후 모든 수리 과정은 그의 비서와 연락하며 진행되었고,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골치 아프지 않은 교통사고를 경험했다.


그날 내가 실감한 건 미국 자본주의의 진짜 얼굴이었다.
돈의 차이는 생활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시간을 잃는가의 차이였다.


그는 사고를 냈지만, 그 사고로 하루를 잃지 않았다.
비서가 있었고, 보험이 있었고, 대신 처리해 줄 사람이 있었다.
반면 나는 사고의 여파를 하나하나 내 시간으로 감당해야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란,
편안함이 아니라 불편함을 외주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씁쓸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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