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가족들과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다.
역사 깊은 성당, 따뜻한 불빛의 크리스마스 마켓, 활기찬 시내.
오랜만에 걷는 유럽의 저녁거리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맛집을 골라 다니며 음식을 나누고,
와인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유난히 여유로워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작은 불편조차 추억이 되는 시간이었다.
길을 헤매도 웃을 수 있었고,
메뉴판을 못 읽어도 괜찮았다.
나는 그곳에서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독일에서 보냈던 지난 5년의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매일이 시험 같았다.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며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었고
머릿속에서는 독일어로
“이게 맞는 표현일까?”
“지금 이 말, 무례하지 않았을까?”
같은 문장들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서류를 받을 때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서명부터 하고,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겨울의 독일은 매서웠다.
눈이 쌓인 길에서 유모차를 밀다 보면
발끝이 먼저 얼어붙었다.
집에 돌아오면 손이 너무 얼어서
장갑을 벗는 것조차 힘들었다.
처음 몇 번은 설레었던 크리스마스 마켓도
몇 해가 지나자
그저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가 되었다.
어느 도시에서나 보이던 성당은
더 이상 감동이 아니라
‘동네에 늘 있는 건물’이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풍경을 볼 여유보다
살아내야 할 하루가 더 컸다.
지금 여행에서 느끼는 설렘은
정해진 기간 동안만 머무는 사람의 자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곳에서
살아야 했다.
언어를 배워야 했고,
관계를 만들어야 했고,
시스템을 이해해야 했고,
무엇보다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여행은 나에게 친절했지만,
삶은 그렇지 않았다.
여행은
불편함마저 추억으로 바꿔주지만,
삶은 나를 바꾸었다.
해외살이 20년째.
이제는 미국도 내 집 같고,
한국도 내 집 같다.
어쩌면 동시에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예전처럼 불안하지는 않다.
나는 이제 여행자가 아니라,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설렘만으로 나는 성장하지 않았다.
위로받은 시간들은 많았지만,
나를 만든 건
그보다 훨씬 불편했던 순간들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자꾸만 작아지던 나,
실수하지 않으려
하루 종일 긴장하던 나,
그 시간들이
나를 흔들었고,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고,
결국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여행은 내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줬다.
하지만 삶은 나를 만들었다.
설렘은 나를 즐겁게 했지만,
나를 깊게 만들지는 못했다는 걸
요즘, 자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