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힘든 밤

잊은 줄 알았던 힘든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면

by MS


이번 추석은 남편이 근무를 해서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추석 당일에는 남편이 일찍 퇴근한 김에 애들과 가까운 캠핑장에서 하루 자고 오기로 했다. 날씨가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늦은 오후에는 구름이 몰려왔다. 해가 다 넘어가고 주위가 컴컴해지니 땅에서 습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습한 걸 좋아하지 않는데, 물기 머금은 무겁고 질퍽한 바람까지 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추워졌고, 공기는 습하고, 몸은 끈적거렸다. 이불을 덮자니 후덥지근하고 걷자니 추웠다. 텐트 문을 열면 춥고 닫으면 축축해서 불쾌하다 못해 짜증이 밀려왔지만, 이 밤은 금방 지나간다, 이 밤은 짧다 라고 생각하며 꾹 참았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뒤척거리다 간신히 잠들었는데, 저 멀리서 앵앵 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결국 나는 잠에서 깼다. 우리 텐트에서 20미터쯤 떨어져 있는 화장실 앞에서 사람 두 명이 싸우는 소리였다. 말투로 보아 한 사람은 술에 많이 취한 상태였고, 한 사람은 짜증이 잔뜩 나있었다. 텐트 간이 창으로 밖을 내다봤지만 잠이 덜 깨서 눈은 잘 안 떠지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소리만 들려왔다.


"씨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아악!! 왜 지랄인데!! 꺼져 개새끼야 꺼지라고!!"
"정신 안 차릴래! 정신 안 차리냐!"
"시발아 쳐봐, 쳐보라고, 쳐보라고 염병아!!"
욕지거리를 들으며 말리러 나갈까 말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지는 주먹이 보였다.
퍽. 퍽. "아으윽.." 이번에는 발로 퍽. 퍽.


눈이 번쩍 뜨였다. 잠이 확 달아나더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서 신고하라고 일렀다. 나는 그들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10미터 정도 간격을 유지한 채 "이봐요!!!" 하고 소리쳤다. 턱이 달달 떨리고 몸이 움츠러들었다. 지금 여기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렸으니 폭력은 멈추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디에선가 일행으로 보이는 왜소한 체격의 여자가 나타났다. 그 여자는 싸움을 말리려고 했지만 별 소용없어 보였다. 맞은 사람은 소리를 더 질러댔다. "저 새끼가 나 존나 많이 때렸어, 흐어어 엄마 불러줘!! 엄마한테 전화해주라고!!" 하면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더니 반대방향으로 뛰어갔다. 때린 사람이랑 말리던 사람 모두 쫓아갔지만, 맞은 사람은 겁먹은 듯 더욱 필사적으로 뛰었다. 차도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나는 걱정되어서 사람들이 사라진 방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텐트 안에는 애들만 있었고, 나는 무서웠고, 남편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텐트 앞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그때도 이렇게 축축하고 서늘한 늦은 밤이었다.


"미서이!! 일어나! 니 엄마 어딨냐. 니 엄마 당장 나가서 찾아와라. 알것냐? 인나서 안 나가고 뭣허냐!! 시발 것아!" 잠자다 말고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밤 11시가 넘었는데, 아빠는 우리 남매를 밖으로 내쫓았다. 이 시간에 어디 가서 엄마를 찾아오라는 건지, 초가을 밤공기에 밤이슬 대신 눈물이 났다. 아마도 엄마는 우리를 재워놓고 아빠가 뱃일 나간 틈을 타 술 마시러 놀러 나간 것 같았다. 엄마가 그럴 것이라 의심을 한 아빠가 예정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는데 예상대로 엄마가 집에 없으니 아빠 눈이 뒤집힌 것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쫓겨난 우리는, 춥고 잠도 오는 이 상태로 어두운 길거리를 헤매고 다녀야 했다. 고작해야 3, 4학년 애들이었는데 말이다.


밤거리를 맥락 없이 빙빙 돌고 있는데 뒤에서 엄마 찾았냐며 아빠가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랐고 혹시나 내가 열심히 안 찾고 있었다고 아빠한테 혼날까 봐, 다 뒤져봤는데 아무 데도 없었다며 열심히 찾아본 척 대충 둘러댔다. 이번엔 아빠와 함께 엄마를 찾아 돌아다녔다.


왼쪽엔 상가들이 쭉 줄지어 있었는데 모두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오른쪽엔 6차선 도로가 있었고 늦은 시간이라 다니는 차들은 없었다. 간간히 택시가 다니는 정도였다. 정면으로는 오르막길이 있었고 곧 내리막길이 이어지는지 길 끝이 선을 긋고 있었다. 그때 선 위로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었다. 아빠는 야!!! 소리 지르며 엄마한테 뛰어갔고 얼마나 마셨냐, 누구랑 마셨냐, 아까 그 새끼는 누구냐, 어떤 새끼냐 라며 엄마를 연신 공격했다. 술 취한 엄마와 말이 안 통하자 아빠는 정신 차리라며 엄마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찻길 쪽 가드레일에 머리를 찍어댔다.


"정신 안 차리냐!" 퍽.
"정신 안 차리냐고!" 퍽.


빼곡히 늘어져 세워진 누런 가로등 불빛은 잔인하게도, 그런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두 개, 세 개씩 겹쳐진 그림자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가 잊을 수 없도록 커다랗게 말이다. 나는 겁에 질렸었다. 턱이 달달 떨렸고 걷기 위해 발을 내딛어도 땅에 발이 닿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아빠는 술에 뻗은 건지, 정신을 잃은 건지 어쨌든 드러누워있는 엄마의 다리를 한 짝만 잡고 집을 향해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었다. 나는 아빠에게 간신히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바닥에 유리조각이 많아서 다칠 것 같아요. 안 끌고 가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아빠가 무어라 대답했는지는 모르겠다. 발이 허공에 들린 채로 끌려가는 엄마의 윗도리가 자꾸 말려 올라가서 속살이 보이길래, 옷을 끌어내려주며 열심히 쫓아갔던 것만 기억난다.

캠핑장에서 내가 사건 현장을 보고 있었을 때, 맞은 사람과 때린 사람 앞으로 그들의 일행으로 보이는 성인 네 명이 지나갔었다. 때린 사람에게 다가가 자기들 먼저 간다며 인사를 했고, 뛰어가는 맞은 사람 뒤통수를 향해서는 언제 저기까지 달려갔데?라고 이야기했다. 분명히 내가 본 것을 그들도 봤다. 그런데 먼저 간다고 인사하더니 정말로 먼저 갔다. 나는 화가 났다. 또, 나와 그냥 가버린 일행들 말고도 그 소란을 보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더 있었다. 경찰관이 남편에게 동일한 내용의 신고전화가 여러 차례 들어왔다고 말했다니까 분명하다. 그런데 나 말고 나와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니, 나는 화가 났다. 그런데 내가 왜 화가 나는 걸까? 맥박이 자꾸 빨라지고 식은땀이 났다.


텐트 앞에 서 있은지 수 분이 지나자 경광등 달린 경찰차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경찰들은 맞은 사람과 때린 사람과 말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따라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남편은 곧 텐트로 돌아왔다. 맞은 사람은 여자였고 때린 사람은 남자였다고 한다. 무슨 관계인지는 못 들었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재차 확인했다. 그 사람 맞은 거 경찰도 알고 있어? 그 사람이 자기가 맞았다고 이야기해? 우리 진술이 필요하진 않데? 경찰도 알고 있는 거 확실하지? 그치? 남편은 경찰들도 폭행 사실을 알고 있고 또 충분히 설명했다고 했다. 맞은 사람, 때린 사람, 말리는 사람까지 세 사람은 파출소로 다 같이 갈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며 내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긴장이 풀리면서 두통이 밀려왔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 왜 이러는 걸까.

내가 그 일을 겪을 때도 똑같았다. 그때 엄마는 소리 질렀다. 나도 소리 질렀다. 신고 좀 해주세요!!! 제발 신고 좀 해주세요!! 왼쪽 줄지어 있는 상가에 딸린 이층 살림집들의 창문들에 딸깍 불이 들어오는 것을 나는 봤다. 엄마와 나는 도움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차는커녕 나와보는 사람도 없었다. 무관심에 마음이 뎅강 베어지는 느낌이었다.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새벽 길거리에서 두들겨 맞고 있는 한 여성이, 그 여성을 지켜보고 있는 어린 자식들이, 처참히 망가져가는 이 가정이 정말 보이지 않았을까? 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짐승같은 아빠에게도 화가 났다. 자신을 포기한 것 같은 엄마에게도 화가 났다. 할 수 있는게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에게 화가 났다.


그러다, 사실 그때 길에는 사람이 정말 한 명도 없었고, 엄마와 나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으며, 아빠도 엄마에게만 들리게 작게 화냈던 것 같은데 싶더니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었어, 그리 심각한 문제 아니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어. 겹쳐진 그림자가 반복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글쎄, 그게 뭐였지?라고 되뇌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감정을 꾹꾹 눌렀다. 밀도 있게 꾹꾹 눌러 담았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지우려고, 잊으려고, 노력했고 성공적으로 그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캠핑장에서 새벽에 내 귀에 들려온 그 둔탁한 마찰음과 어두컴컴한 밤을 비추던 누런 가로등 불빛이 나를 깨웠다. 돌바닥에 살이 긁혀 피가 나고 옷이 찢어지고 있는 엄마를 지켜보고 있던, 나를 깨웠다.


앞으로 당분간은 아주 힘든 밤들이 이어질 것 같다. 가을밤을 다 지냈더라도, 충분한 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아주 힘든 밤들이 이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