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로 Jan 25. 2022

[불안감 길들이기 마지막편] 소중한 사람이 불안해할 때



내가 불안을 이해하려고 애쓰게 된 계기가 있다.



약 1년 전, 제일 친한 친구가 정신과에서 약을 타왔다. 수면제와 항불안제였다.



친구는 평소에 앞장서서 웃긴 말을 하면서 공부도 잘하는 의대생이었다. 같이 있으면 어디에 있든 편하고 좋은 친구였다. 게다가 힘든 일이 있을 땐 담아두지 않고 ㅈ같다고 시원하게 털어놓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업스트레스 하나도 관리하기 힘든 상황일텐데 나는 얼른 친구에게 향했다.



친구녀석은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이 선명했다.



돌이켜보면 친구의 하루에는 불확실한 것들이 많았다. 통제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현생이 너무 바빠서 스스로 매듭을 못짓고 있는 일이었다.



이번 시간에는 그때 당시 불안에 대해 잘 몰랐던 나의 행동을 돌아보며, 친구를 비롯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써보려 한다.




행복이 일상이고, 일상이 행복이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작고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왜 만들어졌을까?



사람들은 행복을 하늘에 떠 있는 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말 그대로 행복해지는 게 하늘에 별 따기가 된다. 그들에게 행복은 작아서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건 너무 멀어서 그런 거고 실제로는 지구보다 클 지도 모른다.



이유가 뭘까? 그건 바로 행복이라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감정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재밌는 걸 보고 웃고, 무언가에 대해 감탄을 하며, 시끄럽지 않은 공간에서 평화를 느낀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행복'이라는 감정의 결핍을 경험한다.



그래서 점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괜찮아. 행복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야."

"행복하지 않아도 큰 아픔 없는 삶을 살고 싶어요."



위로하려고 한 말이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진짜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기만하는 말들이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저런 류의 말들은 행복을 쾌락으로 생각하고 꺼낸 말이다.




PANAS라고 행복한 감정을 측정하는 가장 유명한 도구가 있다.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긍정 감정 리스트에 '행복하다'라는 감정이 따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행복해지기 위해선 행복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긍정 감정에 속하는 정서들을 느낄 때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부정 감정 리스트에 '고통'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 또한 그냥 지나쳐선 안된다.



행복의 심리를 알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불행을 다뤄야 한다. 내가 지금 불안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행복을 다루고 있는 이유와 같다. 이 과정에서 고통이 없어야 행복이라는 것이 오해라는 걸 알게 된다.



많은 부정적 감정이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인간의 조상들이 짐승을 마주쳤을 때 겁에 질려 도망치지 않았으면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진화된 뇌를 물려받은 우리는 현재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고통에 대한 오해는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한 결혼 생활이 부부 싸움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생활이 아니라는 걸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오히려 그러한 강박이 행복을 하늘의 별로 만든다. 모든 감정에 100%란 없다. 행복도 비율의 문제이다.



친구들과 만나 웃고 떠들면서 영화관에 들어가 공포영화를 보고 울고 소리치는 게 인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행복은 철저하게 일상적인 것이다.




비움으로 채운다



의대생 친구는 정말 바쁘게 산다. 시간이 없다는 말이 입에 붙어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간을 내보겠다는 말도 많이 한다. 배울 점이 참 많다.



우리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혹시 시간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건 아닐까?



여기 하나의 실험이 있다.


A : 15분동안 아이들이 쓴 작문을 고쳐주세요.


B : 아이들이 쓴 작문을 고쳐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이미 다 했으니까 15분동안 그냥 쉬세요.



과연 A와 B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A가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할애했고 B는 15분의 자유시간을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실험 결과 A가 시간적 여유를 더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앞서 2편에서 언급했듯이, 불안을 다스릴 때 중요한 건 능동성이었다. 불안해지는게 아니라 불안할 때 우리는 불안을 이용할 수 있었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소중한 사람이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넌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인식을 주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줌으로써 여유를 느끼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똑같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면, 유치하도록 사소한 부탁을 일부러 해보자.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다는 표현을 마구 해보자.



- 심심하니까 같이 산책이나 하자. 나와!


- 목소리 듣고 싶은데 전화나 한 번 받아줘~


- 아 라이터가 없네? 불 좀 빌려주라



위와 같은 부탁을 하고, 덕분에 행복하다고 나름의 방식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불안은 불확실과 모호함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사소한 부탁을 통해 "넌 나에게 확실한 행복을 안겨주는 사람이야"라는 사실을 안겨주자.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남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일을 꺼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오히려 여유를 주고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내어줄 때 오히려 행복해진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이 불안해할 때, 그들로부터 행복을 받는 사람이 되려 한다.



비움으로 채워질 수도 있다는 걸 늘 잊지 않아야겠다.




불안감 다스리기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불안감 길들이기 3편] 결과가 좋아도 불안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