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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Sep 10. 2022

지금 이 순간을 난 어떻게 쓸까

쓰기를 염두하며 달라진 것들

어머니에 대하여 쓰기 시작한 후 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기록을 염두하면서 나는, 매 순간 나를 바라보게 됐다. 언젠가 나중에 지금 이 순간도 기록할 날이 올 텐데,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의 나였나. 미래의 '쓰는 나'를 위해 지금의 나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쓰고 싶은 나를 진짜 쓰게 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었다. 그래서 난 내 어머니를 '나의 뮤즈'라 부른다. 한 줄 두 줄 쓰다 보니 글이 되었고, 글이 모아지니 이걸 책으로 만들어 손으로 만지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걸 영영 남기고 싶어졌다. 다만 하나의 감정은 아니었다. 긍정적 감정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 나에게 너무한 사람들에 대한 반격, 그런 마음들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매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는 것이고 하나의 문장으로 축약할 수도 단언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제일 확실한 것은, 어떤 나쁜 한 사람의 문제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많은데 해석하기 어려운, 빅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우려한 것은, 시어머니에 대한 미화였다. 왜냐하면 나라는 사람은 원래, 과거를 기억하면 할수록 찌꺼기들은 없애고 알맹이만(좋은 기억들만) 남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의 삶에서 불행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그의 눈에서 효행을 읽고 가나,
그는 그것들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가 지은 책 제목은 따로 있다. '나는 효자가 아닌 시민이다.'
효자라는 말은 봉양의 의무만 남기고 한 존재의 복잡한 감정과 생각은 지운다.

은유 <크게 그린 사람> '효자 아닌 시민 조기현' , 31쪽


내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풀어 보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오해를 푼다는 개념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들을 푼다는 차원에서-때때로 과몰입하게 됐고, 그 정도의 노력은 당연히 필요했다. 타인과의 일을 되뇌고 곱씹는 것은 골치 아프다. 하지만 필요하다. 관계를 개선하고자 적극적으로 소통하지는 못 할 망정 생각과 고민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단어로 무언갈 설명하려 할 때에, 그 속에 담긴 사연은 가려진다. 만약 정말 내가 "나의 뮤즈, 나의 시어머니"에 대한 글을 책으로 만들게 된다면, 그래서 그 책을 누군가 읽게 된다면, 읽는 누군가가 제목만으로 책 전체를 가늠하게 되지는 않길 바란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고 책을 읽어주기를, 소망한다.


언젠가 내가 책을 낸다면 이 문장을 서문으로 써야겠다.


2022. 9.10. 오늘도 야무진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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