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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Sep 13. 2022

시어머니가 나의 뮤즈가 되기까지는

15년 간의 서사가 있다.

얼마 전 친구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를 함께 보낸 친구여서 그런지 어머니도 종종 뵀었다. 대학 갈 때,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결혼식 때, 아이를 낳은 다음에, 종종 뵈었지만 아이를 낳은 후 바삐 살면서 뵙지를 못 했다. 아이 때 만났으니까 '어머니'라는 단어보다는 '아줌마'라는 단어로 불렀던 그분, 나에게 김치볶음밥도 해 주시고 대학 입학 축하도 해 주셨던, OO 아줌마가 돌아가셨다.

빈소에서 내 친구를 만났을 때 우리는 붙잡고 아줌마 사진 앞에서 엉엉 울었다. 10대로 돌아가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친구의 몸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주었다. 상처 투성이인 이 아이를 어떻게든 안아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쓰다듬고 어쩔 줄 모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나의 뮤즈, 나의 시어머니에 대한 글들을 모아 브런치북을 발행해 놓고 보니, 정말 책처럼 보였다. 브런치 앱에 동동 떠 있는 내 책 '나의 뮤즈, 나의 시어머니' 표지는 알록달록한 어머니 그림이다. 내 언니가 내가 찍은 어머니 사진을 다시 곱게 그림으로 그려 주었다. 알록달록한데 브런치 앱에서 내 브런치북을 보면 볼수록 나는 뭔가 쓸쓸하고 애잔하고 대견한 기분이 든다. 꽤 오래전 끝난 전쟁의 흔적을 보는 기분이랄까. 손에 잡히지도 않는 책을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 자꾸 든다. 며칠 전 상처 투성이인 내 친구를 안아주고픈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내 브런치북도 그렇게 안아주고 싶다.


어머니가 처음부터 내 뮤즈였던 건 아니다. 나에겐 어머니에 대한 15년이 넘는 서사가 있다. 그분이 내 뮤즈가 되기까지 나는 길고 복잡하고 지난한 시간들을 지냈다. 지금도 활활 타오르는 중인 상처가 아니라 이미 다 끝나버린 흉터이긴 하지만, 상처였던 적이 있기에 지금도 종종 다시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난, 곧 훌훌 털어버리는 내가 됐다. 15년 동안 나는 눈물만 흘린 것이 아니라, 복잡한 시간만 보낸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서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부분들을 보게 됐다.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다면 내 글들이 지금의 태도는 가지지 못했을 거다. 받아들이면서 내가 여태껏 못 봤던 것들, 봤지만 외면했던 것들, 보고도 금세 잊었던 것들이 앞다퉈 튀어나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믿는 신에게 감사하고 세상에 감사하고 시간에 감사하고 내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


(쓰고 보니 왠지 연말 연시에 써야할 것 같은 분위기의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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