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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Sep 26. 2022

어머니의 루틴

어머니의 일상, 지켜드려야 할.


언젠가 그때가 20대였나, 30대였나.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어러 번 있다.


제발, 무슨 일 좀 안 일어나나?


뭔가 가슴 뛰는 이벤트가 내 인생에 일어나기를 무척 기다렸다. 일상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나 심심했으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마 내가 아주 젊었을 때였나 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매일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이 일상이 너무나 지루하다며, 제발 무슨 일 좀 일어났으면 좋겠다며 동료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는 출근하면 기본 하루 12시간은 사무실에 갇혀 바삐 일했는데도(아니 그래서 더 그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 내 어머니의 나이인 90쯤 되면, 반대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지나 보다. 어머니 집을 이사하려고 가족 모두가 의논할 때 제일 우려한 것도 일상의 변화였다. 치매로 진단받은 적은 없으시지만, 90이 된 노인에게 거주지의 변화는 받아들이기 버거울 것이라는 의견에 가족 모두가 동의했다. 제일 젊은 막내 동생 부부를 제외하고는.


그런데 이제, 우리도 그 우려에 동의하게 됐다.


지난 추석은 오랜만에 두 아들의 가족과 어머니까지, 총 세 가족이 한 집에서 먹고 잤다. 한 방에 한 가족씩 자기로 하고 이부자리를 폈는데, 어머니가 반복적으로 문단속을 하셨다. 젊은 자식들은 추석의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자꾸 창문과 문을 열어 대고, 나이 든 어머니는 문을 왜 자꾸 여냐며 쌕쌕 숨을 몰아 쉬시면서도 이 방 저 방 옮겨가며 닫고 닫고 또 닫고. 문단속에 대한 강박이 안 그래도 심하신데, 자식들이 와서 자꾸 열어 대니까 꽤나 스트레스를 받으셨을 거다. 결국 웬만한 문은 다 닫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 이번엔 가족 중 슈퍼에 간 조카가 문제가 됐다. "왜 이 시간에, 뭘 사러, 슈퍼에 갔냐?"며 반복적으로 질문을 하시더니, 걱정이 돼서 잠을 잘 수 없으시다며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

 

서울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나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제 어머니 집에 가더라도 함께 잠을 자는 것은 되도록 피하자고. 자식들이 뵈러 가면 깜짝 반가워하시기는 하지만,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길 막히니 돌아갈 준비를 하라고 먼저 서두르시는 걸 보면 1분이 1시간 같고 1시간이 1분 같을 때가 있으신가 보다고. 그리고 2년 전 밤에 화장실에 다녀오시다가 넘어져 어깨가 빠졌던 것도, 사실은 닫혀 있는 창문을 닫으시겠다고(열려 있다 생각하시고) 어두운 방을 들어가느라 그랬던 것이기도 하고.


얼마 전 이웃 브런치 작가님의 글 해답은 가까이에서 보인다 (brunch.co.kr)에서 보니, 방범을 위해 문단속을 철저히 하는 것은 나이 드신 분들에게서 보이는 젊은 시절의 습관인 듯하다. 그렇다면 괜스레 문을 열어 '닫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이 흐트러지는 건 불안을 높이고, 불안이 높아지니 하지 않던 행동을 무리해서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시 더 크게 일상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서다. 슬픈 일만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기쁜 일도 몸과 마음에는 스트레스라는 말도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무료했던 날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스러워지는 상태로의 변화. 일상의 소중함은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는 걸까. 아무튼 그래서, 어머니의 루틴을 되도록 지켜드리기로 우리는, 합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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