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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Oct 12. 2022

요양 보호사의 전화가 무섭다

밤이고 낮이고 아침이고

9시 수업 중인데, 어머니 요양 보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재중 전화 3통. 내가 오전에는 수업 중이라 전화를 못 받는 것을 아시는데 연달아 3통을 하셨다. 아니 사실 전화가 오는 것조차 몰랐는데, 갤럭시 워치를 보니 나도 모르는 새 부재중 전화 3통이 와 있다. 잠깐 당황했지만 수업이 진행되는 중이어서 어쩌지 못하는 사이 20분이 지났다. 내가 전화를 안 받으니 그 사이 남편에게도 전화를 하신 것 같은데, 남편도 못 받았나 보다. 요양 보호사와 우리 부부가 함께하는 단톡에 남편이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둘 다 전화를 못 받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이시냐고. 답이 없다.


요양 보호사로부터 회신이 오기까지 다시 10여 분. 부재중 전화를 발견한 후부터 30여 분 동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웠다.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깐 나가서 전화 통화를 해 볼까, 남편하고는 연락이 되었을까, 중하고 급한 일이 아니라면 연달아 세 번이나 전화를 하시진 않을 텐데, 지금 내가 만약 어머니 집에 달려가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당장 다음 시간 수업은 어떡하나, 나는 바른 정신으로 1시까지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다행히 곧 회신이 왔고, 아침부터 수선스럽게 걱정 끼쳤다며, (멋쩍어하시는 게 보이는) 답이 왔다. 급한 일이기는 했지만 다행히 중한 일은 아니었고,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밤에 오는 전화는 모두 무섭다. 어릴 적 엄마 아빠랑 같은 방에서 잘 때, 엄마 아빠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받는 전화는 다 비보였다. 아직은 혈기 왕성했고 젊었던 삼촌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엄마 아빠는 어두운 방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 낮은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집 전화가 없어져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도 든다. 밤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이제 듣지 않아도 되어서. (문득 깨달았는데, 나는 집에서도 항상 전화를 진동으로 해 놓는다.)


한동안 어머니께서 새벽에 전화를 하신 적이 있었다. 새벽이라기보다는 이른 아침. 6시 조금 지나서 전화를 하셨었는데, 뭔가 골칫거리가 있으신 시절이었다. 아마도 밤새 고민하다가 막내며느리에게 무언갈 당부해야지 밤새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해가 뜨자마자 전화를 하신 모양새였다. 그렇게 똑같은 전화를 몇 주째 하시더니, 골칫거리가 해결되자 더는 하지 않으셨다.


언젠가 한 번은 대낮에 전화가 왔었다.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집 전화로 전화를 하신 것 보니, 다행히 안에서 밖으로 못 나가시는 거였다. 밖에 산책 나왔다가 안으로 들어가시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안도하긴 했다. 공교롭게 요양 보호사께서 타 지역에 출장을 간 날이었다. 그럼 어떡하나, 집 근처 목사님께 좀 가 봐 달라고 부탁을 드릴까, 당시에는 난처했지만 내 마음이 진심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어쨌든 어머니가 직접 하시는 전화는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무섭지는 않다. 그냥 어머니가 손수 전화기를 드신 걸 테니, 번도 무섭다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요양 보호사가 하는 전화는 무섭다.


그래서 이제, 아침 전화도 무섭다.


전화의 본래 기능은 소식을 전하는 것일 텐데, 그 소식이란 비보와 낭보 모두를 말할 텐데. 아무래도 요양 보호사가 전할 낭보가 상상되지 않아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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